사라지는 것들은 적막이란 소리를 낸다… 문인수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적막 소리’
입력 2012-01-12 18:34
“이곳 패션센터 건물 앞, 붉은 대리석 조각 매끈한 상단에 이 무엇이,/ 웬 조그만 새 한 마리가, 입가가 노란 참새 새끼 한 마리가 반듯하게 죽어 있다// 돌에 싹터 파닥거린 새의 날개가 허공에 눌려, 그리하여 끊임없이/ 돌에 스미는 중인지”(‘죽은 새를 들여다보다’ 부분)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선보이고 있는 문인수(67)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적막 소리’(창비)에 수록된 첫 번째 시이다. 지상에 존재하지만 목숨이 끊어진 참새. 생의 저편, 죽음으로 넘어간 대상에서 흘러나오는 무심한 잠언이 시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아흔 고개 바라보는 저 할머니/ 오늘도 물질 들어가신다. 좀더 걸어 들어가지 않고/ 무릎께가 물결에 건들리자 그 자리에서 철벅,/ 엎드려버리신다. 물밑 미끄러운 너덜을 딛자니 자꾸/ 관절이 시큰거려/ 얼른 안겨/ 편하게 헤엄쳐 가시는 것이겠다.”(‘해녀’ 부분)
할머니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물에게, 바다에게 맡겨버린다. 할머니에게 바다는 이미 지상과 저승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몸을 담그면 부력으로 할머니를 떠받쳐 주는 바다. 거기서는 시큰거리는 관절염도 느끼지 못한다. 부력이 있는 곳, 어쩌면 여기까지가 가능의 문턱이다. 그 너머는 이쪽 생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가능의 문턱일 터이다.
“그는 막차로 떠났다. 밤 열시 사십분 발,/ (중략)// 버스가 출발하고… 보이지 않는다. 육신도 정신도 아니고 이건 또 어디가 부실해지는 것인지/ 사람하고 헤어지는 일이 늙어갈수록 힘겨워진다. 자꾸 못 헤어진다”(‘동행’ 부분)
칠순을 앞둔 시인의 눈엔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대상들이 자주 어른거린다. ‘못 헤어지는 것’은 막차를 타고 간 ‘그’일수도 시인 자신일 수도 있다. 죽음이란 불가능의 문턱 저편일 것이니 시인이야말로 자신과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자꾸 못 헤어진다’고 노래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적막이라고 해도 그건 가능의 문턱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적막도 산천에 들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적막도 복받치는 것 넘치느라 소리를 내는 것이겠다./ 새소리 매미소리 하염없는 물소리, 무슨 날도 아닌데 산소엘 와서/ 저 소리들 시끄럽다, 거역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본래 적막이었고 지금 다시/ 적막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중이어서 그런가”(‘적막 소리’ 부분)
그런가 보다. 적막이 소리를 더 많이 내고 있는 것이다. 적막도 불가능의 문턱을 넘어갈 수 없다. 가능의 문턱, 가능의 벼랑 끝, 적막은 그곳에서 더 소리를 질러댄다. 시인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주변의 그늘진 삶을 관찰하면서 하나의 풍경으로 형상화한다. 무슨 해설이 더 필요할까. 시 한 편을 더 읽는 게 낫다.
“개펄을 걸어 나오는 여자들의 동작이 몹시 지쳐 있다./ 한 짐씩 조개를 캔 대신 아예 입을 모두 묻어버린 것일까,/ 말이 없다. 소형 트럭 두 대가 여자들과 여자들의 등짐을,/ 개펄의 가장 무거운 부위를 싣고 사라졌다.// 트럭 두 대가 꽉꽉 채워 싣고 갔지만 뻘에 바닥을 삐댄 발자국들,/ 그 혈(穴)들 그대로 남아/ 낭자하다. 생활에 대해 앞앞이 키조개처럼 달라붙은 험구,/ 함구다. 깜깜하게 오므린 저 여자들의 깊은 하복부다.”(‘만금의 낭자한 발자국들’ 전문)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