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태일 (10) “목사가 되라” 음성에 낮엔 세일즈 밤엔 신학교
입력 2012-01-12 18:27
낮에는 세일즈를 하고 밤에는 신학교를 다녔다. 짬짬이 시간을 내 늘어가는 ‘즐거운 집’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을 지어나갔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길에 버리는 장롱이나 문짝들을 수거해 시간이 날 때마다 판잣집을 지어 갔다. 재개발 지역의 빈 집을 개조해 한 때는 방을 50개나 만들었다.
당시 주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시온보육원의 교회에 나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두 명일 때는 괜찮았지만 10명이 넘어 20명에 육박하자 가족들끼리 싸우거나 되는 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보육원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지금도 보육원 원장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없이 한두 곳 다른 교회에 출석해 보았지만 믿음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3년 전 “목사가 되라”는 주님의 음성이 새삼 내 귓전을 울렸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성경의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불렀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실 때 이런 환경으로 몰아가셨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오랜 시간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시킨 후 부르셨단 말인가?
출애굽기 3장의 “모세가 양떼를 몰고 호렙산에 이를 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나타내시며 떨기나무 옆으로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고 모세에게 보이며 하나님께서 내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가 선 곳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과연 내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설레고 두려운 마음을 부여안고 쉽지 않은 결심으로 나는 신학교에 들어갔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다는 것은 일생을 나를 위하여 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과연 내가 남을 위하여 내 몸을 바칠 수 있다는 말인가? 수없는 의문과 주님의 명령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매일 야간신학교를 다녔다. 멀리 있는 소위 좋은 신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당장 챙겨야 할 가족들 때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신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나로선 가족을 돌보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가족이 내 몸이 되어 버렸다. 잠시도 이들을 떠나서 생활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서부터는 곧잘 게으름을 피우던 내가 마냥 부지런해지고 열심을 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자가 찾아왔기에 취재에 응했다. 모 일간지 1989년 12월 15일자 사회면에 나에 관한 기사가 크게 나갔다. 그리고 이듬해 MBC TV의 ‘인간시대’에도 나가게 되었다.
이 때 또다시 하나님께서 지혜를 하나 주셨다. 2년 전부터 재가복지를 하던 중 후원신청서를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월 1000원이면 누구든 쉽게 참여할 줄 알았는데, 많은 이들이 하찮게 대해 자존심이 상해 포기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많은 이들이 직접 즐거운 집에 찾아와 돕겠다고 하는 마당에 후원자를 얼마든지 참여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후원신청서를 내놓자 너 나 없이 참여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권유해 순식간에 후원자 2000명이 생겨났다. 이에 용기를 얻어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런 차에 또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제2의 사명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었다. 32세 된 병색이 완연한 한광훈이라는 형제가 찾아와 수술을 하게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인 즉,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중풍까지 걸리자 어머니는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고 자기 또한 후천성 심장병으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다리가 퉁퉁 붓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미천한 나를 이용해 또 하나의 ‘거사’를 도모하셨다.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9)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