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방랑기(27)
입력 2012-01-12 15:37
키신저와의 탁상담화
헨리 키신저라면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과 베트남 전쟁을 마무리 짓는 협상의 주역이었던 사람,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서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말끔히 해결한 사람, 그리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이름을 휘날리는 교수였습니다. 지금도 그의 저술들이 수없이 많이 읽혀지고 있으며, 그가 시사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면 온 세계 언론들이 다투어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국무장관 시절에 유태인들에 대한 비판을 했던 일이 밝혀지면서 자칫하면 코너에 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를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대문 앞까지 나와서 반가이 맞아주었습니다. 몸이 퉁퉁하고 백발이 성성했습니다. 얼굴은 여전히 그 특유의 미소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제가 바로 만나 뵙기를 약속받은 예수라는 청년입니다. 다윗왕의 후손이지요.”
“헨리 키신저입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는 명함을 한 장 주었습니다. 나 예수는 아직 명함이 없어서 이런 경우 좀 멋쩍기도 했습니다. 거처도 일정하지 않아서 명함에 넣을 내용이 별로 없기도 합니다.
그는 나를 자신의 서재로 안내했습니다. 상당히 넓은 방인데 사면 벽이 책으로 가득가득 차 있었습니다. 탁자에 앉아 덕담과 은담을 나누는 동안 미세스 키신저가 따뜻한 커피를 가져왔습니다.
“요즈음 어떠십니까? 같은 피를 나눈 유태인들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으실 터인데요.”
“아, 그것 말입니까? 유태인들보다 더 이기적인 집단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 벌써 40년 전의 일인데요 뭐. 그리고 욕설일 것도 없습니다. 사실이 그런 걸요.”
“우리 동족 유태인에 대한 비판이라면 저 예수가 훨씬 더 심했지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화 있을진저’ 같은 폭언을 퍼부었을 정도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쩝니까? 이집트에서 4백년 넘게 종살이를 했어도 도루묵이 되었고,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했어도 그 타령이 되었으니까요.”
“사실 다른 민족들이 유태인을 비판하고 싶어도 히틀러 치하에서 6백만 명이나 학살당한 것 생각해서 많이 참았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 다시금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오만 방자해지고 말았어요. 다른 모든 민족이 그처럼 이기주의자가 되어도 유태인만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요.”
“세상 사람들이 이를 빠득빠득 갈며 증오하는 대표적 인물이 하나 있지요.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입니다. 채무자의 가슴살을 베어내겠다고 끝까지 주장한 그 주인공 말입니다. 그가 또 유태인이 아닙니까? 그리고 스승을 은 삼십 곧 노예 값을 주고 팔아넘긴 가룟 사람 유다도 유태인의 이기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고요.”
“아아, 키신저 박사님, 저와 관련된 이야기는 감추어주시면 좋겠네요. 온 인류의 죄악을 속죄하시려는 하늘 아버님의 뜻과 관련된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를 포함하여 유태인 모두가 속죄를 받은 셈입니다. 부끄러움을 상당부분 면하게 되었지요. 다윗 왕의 자손 예수님께서 유태인이라는 것 때문에......”
이정근 목사(원수사랑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