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명 거두는 일을 그만 두라니”… ‘베이비박스’ 구청과 마찰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입력 2012-01-11 21:20


“띵동.”

지난 6일 오후 9시 이종락(58·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가 운영하는 영아보호시설 주사랑공동체의 거실 벨이 울렸다. 조심스레 현관 옆 벽에 설치한 ‘베이비박스’를 열어보니 탯줄도 정리되지 않은 생후 8일 정도의 사내아기가 낡은 포대에 싸여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목사님, 하나님께 맡깁니다’는 생모의 편지와 예방접종 일정과 함께….

2년 전에 설치된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에는 지금까지 버려진 29명의 아기들이 들어왔다. 이 아기들은 대부분 장애가 있거나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미혼모의 자녀들이다. 베이비박스는 영아 임시 보호함으로 집벽을 뚫어 공간을 만들고 문을 설치한 뒤 버려지는 아기가 박스안에 놓여지면 집안에서 벨소리를 듣고 아기를 데려올 수 있게 설계됐다.

이 목사는 버려지는 아기들을 잠시 안전하게 보호해 주려고 이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에 알려지면서 관악구청이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째 4명의 활동보조인 파견을 중단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악구청은 이에 대해 “과거 교회에 활동보조인을 파견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지원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법상 연고가 없거나 확인되지 않는 아동들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 담당 지자체의 조사와 병원의 검사를 거친 뒤 보호시설로 보내지게 된다. 하지만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는 순기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악용한 사람들이 영아를 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지원을 중단했다는게 구청 측 설명이다.

이에 대해 주사랑공동체는 구청 측 주장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주사랑공동체는 “무엇보다 영아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쓰레기장에, 화장실에 영아가 버려지고 있는데 이런 영아유기를 누가 안전하게 보호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교회가 활동보조인 4명을 지원받아 버려진 아이 14명을 양육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인력지원을 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지원중단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상에는 ‘소중한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니 지원을 재개하라’라는 의견과 ’영아 유기를 조장하니 설치하지 말라’는 의견이 팽팽하다.

구청 측은 현재 역기능을 우려해 베이비박스 철거를 권고하고 있다. 양육하는 14명 아이 중 입양하지 않은 4명의 아이들을 국가시설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또 보건복지부에 베이비박스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의뢰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에서도 며칠 전 직원을 파견해 이런 아이들의 출산 및 양육 대책을 묻기도 했다.

고려신학교를 졸업한 이 목사가 이런 사역에 나선 것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큰 아들 은만(25)씨 때문이기도 하다. 14년 동안 아들 때문에 병원에 다니면서 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정병옥(58) 사모도 힘을 모았다. 이 목사의 집 앞에 사연 있는 아기들이 하나둘 버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목사는 현재 10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나머지 4명의 아이도 호적에 곧 올릴 예정이다.

이 목사 부부는 “이 사역은 근본적으론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국가와 베이비박스 사역이 조화를 잘 이룬다면 영아를 아무데나 버리는 참혹한 일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교계의 기도와 관심을 호소했다(02-854-4505·cafe.daum.net/giveoutlove).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