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정용욱 사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입력 2012-01-11 18:03


“단순한 개인 비리인지 권력형 범죄인지 검찰이 철저한 수사로 밝혀내야”

‘정용욱을 아시나요’

시류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연초부터 몇 몇 신문과 방송에 여러 번 등장했던 인물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정책보좌역이었던 그는 업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현재 해외 도피 중이다. 얼핏 단순한 개인비리로 보이는 이 사건이 관심을 끄는 것은 정씨 뒤에 이 정권 최고 실세라 불리는 최 위원장이 있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사건이 ‘게이트’로 격상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방통위로부터 종편을 선물 받은 주요 신문들이 애써 모른 척하면서 폭발력이 증폭되지는 않는 분위기지만, 고구마 캐듯 하나씩 끄집어 내다보면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드러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반적인 개인비리로 단정하기에는 사건의 성격과 내용이 찜찜하기 때문이다.

정씨가 언론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2일 구속된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EBS 이사 선임 대가로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포착되면서부터다. 그러나 사정 당국의 추적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통신사들의 이동통신용 주파수 선정, 종합유선방송사들의 채널 선정 등과 관련, 상당한 액수의 금품을 받았다는 정황이 포착돼 내사가 시작된 것이다. 정씨는 이를 눈치 채고 지난 해 10월 “해외에서 사업이나 하겠다”며 사표를 내고 출국한 이후 지금까지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를 떠돌고 있다.

궁금한 점은 도대체 정씨가 어떤 인물이고 최 위원장과 어떤 관계이기에 엄청난 힘이 필요한 이런 비리에 연루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40대 후반인 정씨는 대구의 한 대학 법대를 졸업한 후 상경, 출판업체들이 밀집한 마포 출판단지에서 ‘한섬기획’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했다. 이 회사는 주로 정치 홍보 관련 출판 인쇄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여론조사기관 갤럽 회장이었던 최 위원장과 만나게 됐고, 최 위원장이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 비선조직인 ‘최시중 여론동향팀’을 구성하면서 합류,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여의도 대하빌딩 4층에 꾸려진 최 위원장의 사무실에서 정씨는 핵심적인 실무를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그는 여러 언론에 ‘최 시중의 최측근이자 이대통령의 핵심 인맥’으로 소개된다. 한 언론사가 2008년1월 펴낸 ‘이명박의 핵심 인맥’이란 책에는 ‘냉정한 정세 분석이 돋보이는 MB의 핵심 브레인’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2008년 3월 방통위원장이 된 최씨는 같은 해 7월 직제에도 없는 정책보좌역(4급) 자리를 만들어 정씨를 데려왔다. 최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렸다는 그는 사실상 방통위의 2인자로 여겨졌다고 한다. 자신이 스스로 양아들이라고 말했는지, 위세가 있다보니 주변에서 그렇게 불렀는지 알 수 없으나 그만큼 그에게 최 위원장의 무게가 실렸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출범 이후부터 방통위가 실질적으로 위원장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최 위원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그의 발언은 자연스레 최 위원장의 뜻으로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방통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청와대와 국회 관련 정무보좌 역할을 맡으면서 그의 힘은 절정을 이룬다.

정씨 사건으로 방통위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업계의 이익과 갈등을 조정하는 방통위 자체의 신뢰성에 큰 흠이 생겼다. 최위원장 측은 언론을 통해 이번 사건이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방통위의 추락한 위상은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어떤 수사 결과가 도출되느냐에 국민들의 눈이 쏠려 있다. 권력자에 기생한 일개 보좌역의 개인 비리인지, 권력의 엄호를 받으며 저지른 권력형 범죄인 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국민들은 과거 이승만 대통령의 가짜 양아들 ‘이강석’에게 속아 넘어가는 그때 그 사람들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점만은 검찰이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