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인디언 학생들의 회의
입력 2012-01-11 18:00
지금도 미국 곳곳엔 네이티브 아메리칸(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많이 변형되긴 했지만 그들만의 오래된 전통을 지키는 곳이 많다고 한다. 얼마전, 미시간주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 교육하고 있는 분으로부터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인디언 학생들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이분은 인디언 학생들이 절반 정도인 클래스에서 “다음 주엔 시험이 있을 것이고 이번 시험은 무척 중요하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시험 당일이 되자 학생들은 서로 자리 하나씩 건너 띄어 앉으려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디언 학생들은 갑자기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그래서 “왜 너희들은 시험을 보는데 모여 앉느냐”고 물었더니 인디언 학생이 물끄러미 교수를 쳐다보더니 “이번 시험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하니, 학생이 답하기를 “우리는 중요한 일엔 이렇게 둘러앉아 다 같이 회의를 통해 해결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빠른 의사결정은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경쟁력의 여러 요소들은 거기에 속한 구성원의 직업을 안전하게 만든다. 또 직업이 안정되면 구성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한결 덜 것이고, 불안감이 덜해지면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시간으로 가족의 삶을 채울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회의 기본 틀을 바꾸지 않는 이상, 신속한 의사결정과 조직의 효율성, 경쟁력들은 중요하게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매일 미디어를 통해 듣고 있는 ‘경쟁력’이라는 말이 필자를 비롯한 예술가들에게는 별로 편하지 않게 다가온다. 개인의 인격이 조직의 효율 밑에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오히려 인디언의 결정방식이 마음에 든다. 빨리 무엇을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닌, 답을 구하는 과정 자체의 경험을 모두가 나누게 되니 얼마나 인간적인가. 여기서 얻는 답은 현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다른 내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둘러앉는 의미는 또 있다. 경쟁을 통해 얻은 안정감이 아닌,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을 것이다. 원초적 영성이 뛰어났다는 인디언 문화의 아름다움을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겠으나 삶을 바라보는 관점만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미지로의 여행이고, 그래서 더 흥미진진한 여정이다. 누군가가 살아 남아야 한다는 불안감에 가득차 있거나 남보다 뛰어난 성과만을 추구한다면 서글픈 일이다. 존귀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이 주어지더라도 살아가는 경험 자체와 그 과정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중요한 일일수록 모여 앉아 그 과정에 집중하는 인디언 학생들처럼 말이다.
임미정(한세대 교수·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