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부모의 길, 자녀의 길
입력 2012-01-11 17:59
모처럼 대청소를 하였습니다. 제법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겹겹이 껴입은 옷의 무게가 제법 나가고, 모처럼 바깥나들이를 하는 날에는 양 볼을 스치는 칼바람이 매섭기까지 한 겨울입니다. 그래도 삼한사온으로 만나는 겨울속의 작은 봄들이 있어, 햇살 가득한 날이면 밀린 집안청소도 하고 살림버리기(?)를 합니다.
지금 사는 집에서 십년 넘게 살다보니 이런 저런 살림살이가 꽤 많아졌습니다. 늘 쓰고, 꼭 필요한 것도 있지만, 수년이 지나도 손길 한번 닿지 않는 필요가 크지 않는 살림살이들이 눈에 거슬리고 불편하기도 하지요. 하여 맘먹고 정리합니다. 누군가에게 소용이 있음직한 것들은 잘 손질하여 기부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과감히 버립니다.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참 행복합니다.
우리네 삶 가운데서 시시때때로 만나게 되는 버거움들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저만치 가다보면 어느새 또 양손 가득 들고 헉헉거리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그저 헛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작년 가을 군대를 가야할 나이가 된 준영이 형이 심리상태가 좋지 않아 신경정신과 검진을 해보니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대학을 휴학한 뒤 상담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한 준영이 형은 상태가 그리 좋아지는 기미가 없었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열흘 넘게 잠적하고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고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준영이 엄마의 울음소리….
겨우 전화추적을 해보니 그 녀석은 다니던 대학근처 아는 선배 자취방에서 지내고 있었고 자기는 이게 행복하니까 걱정말라는 문자만 한 통 보내고 말았답니다. 그날 준영이 엄마는 울음을 삼키면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생업을 위해 전화기를 잡고 일을 해야 하는 그녀의 타는 목줄기가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밑반찬과 간식을 만들어 파는 두꺼비 이모는 어려워지는 살림살이에 날로 무거워져가고 있습니다. 불경기인 탓에 수입도 줄었고 여기 저기 외상은 깔려 있어 수금은 되지 않고 정말 못살겠다고 불평을 터뜨릴 때면 종종 육두문자가 따라오곤 한답니다.
밤 12시에 시작해서 새벽 3시에 끝나는 그녀의 장사는 따끈따끈한 어묵, 떡볶이, 만두, 순대 등등을 가득 싣고 야외용 가스레인지와 가스통까지 보탠 초록색 리어카와 더불어 시작합니다. 얼굴과 발 그리고 손등까지 동상에 걸린 그녀는 무거운 리어카만큼 그렇게 버거운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을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을 냅니다,
십년 동안 집을 나가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무책임한 남편을 왜 받아 들였느냐고 물어보니 딸아이 시집보내려고 그랬다는 이야기도 눈물과 육두문자였지요. 아저씨가 감기몸살이 심하게 걸렸다면서 쌍화탕과 최고로 좋은 약을 달라던 그녀의 얼굴은 사랑하는 남자를 걱정하는 여린 여인의 얼굴이었습니다.
미아리 집창촌에선 그녀가 욕쟁이와 쌈쟁이로 불리지만 사실은 결고운 생 명주 같은 그런 여린 마음씨를 지닌 오십대의 여인이랍니다. 날로 거칠어져 가는 그녀의 모습이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아이들한테는 부담스럽고 어찌보면 부끄러울 수 있는 엄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십년 만에 만난 아버지가 용서 안 되었던 아이들은 그 모든 원망을 엄마에게 쏟아내면서 살고 있습니다.
조분조분하게 아이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말하려 하였으나 번번이 버럭 고함으로 끝나고 만다면서 그녀는 자신은 왜 이리 미련하냐고 가슴을 펑펑 때리곤 합니다. 아이들과 부모의 길은 서로 어우러지기가 참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저희와 하나님 아버지께로 온전히 가는 길 또한 이만큼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미욱한 저희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저희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서울 미아리 집창촌 입구 ‘건강한 약국’ 약사. 하월곡동 한성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