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돈봉투 일파만파] MB-박근혜 사생결단식 경쟁 의원·당협위원장 쟁탈전 치열

입력 2012-01-11 19:00

한나라당의 2007년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는 우리나라 정당사상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사생결단식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경선 당시 두 후보의 국민 지지도 합계가 60%를 넘고, 한나라당 지지도가 50%를 넘나들어 ‘후보경선 당선=대통령 선거 당선’으로 인식됐었다.

전당대회는 2007년 8월 20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6월 11일 후보접수를 받은 결과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 원희룡 고진화 등 5명이 등록했다. 그러나 경선전은 초반부터 이명박 박근혜 후보 간 양자대결 양상으로 전개됐다. 고진화 의원은 중도에 포기했으며 홍준표 원희룡 후보는 완주했지만 들러리로 인식됐다.

경선에선 선거인단 투표 80%와 여론조사 20%로 승부를 내도록 돼 있었다. 선거인단 투표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당내 표심 잡기 경쟁이 치열했다. 대의원과 당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는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사상 처음으로 후보검증청문회가 열리고 4차례의 정책토론회, 13차례의 전국 순회 합동연설회가 진행되면서 경선전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은 지지후보를 택일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고진화 후보가 사퇴 기자회견에서 계파정치와 줄 세우기를 강도 높게 비판할 정도였다.

경선 막판에 이 후보의 서울 도곡동 땅 차명보유와 BBK 의혹을 놓고 두 캠프는 날카롭게 대립했다. 이러다 대선 전에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경선 결과는 이 후보의 1.5% 포인트 차(49.6% 대 48.1%) 신승(辛勝)이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박 후보가 다소 앞섰으나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가 51.55% 대 42.73%로 크게 앞선 결과다.

경선에서 근소한 차로 패배한 박 후보가 결과에 승복하겠다며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전당대회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양측의 앙금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성기철 기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