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대치 악화일로… 정부 ‘원유 수급’ 초비상

입력 2012-01-12 00:34

미국과 이란의 대치 상황이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우리 정부는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대체 원유 및 수송로 확보, 비축유 방출, 수유억제 등 다양한 시나리오도 점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1일 “이란산 원유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는 미국의 국방수권법 적용 대상에서 우리나라를 예외로 인정해주도록 요청하기 위해 이달 중 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외교통상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방미 대표단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망태도를 보이던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바뀐 것은 미국과 이란의 대치가 장기화될 경우 외교적인 부담이 커지고 유가가 올라 물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아울러 미국과 이란이 정면충돌하는 상황도 가정해 대체 원유 수송로 확보와 원유 도입선 변경 등 비상 대책을 검토 중이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세계미래에너지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12일 중동 순방길에 오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만 오만(13~15일)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16~18일)을 차례로 방문할 뿐 우리의 주요 원유 수입 대상국인 사우디와 쿠웨이트, 카타르 등은 순방국에서 빠져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다른 주요 인사의 방문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란산 석유 금수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중국 총리가 사우디와 카타르를 방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란 지적이다.

정부는 원유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차량 2부제와 건물온도 제한, 조명제한 등 수요억제에 이어 비축유 방출도 실시하게 된다. 비축유는 전국 9곳의 저장시설에 원유 형태로 국내 사용량의 6개월분이 확보돼 있다. 정부는 1991년 걸프전 당시 등 3차례 비축유를 방출한 적이 있다.

정부는 또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걸프해역 쪽이 아닌 홍해로 원유수송로를 변경하거나 사우디송유관을 통한 대체 수송로 확보, 이란 원유 비중 축소 등 다양한 대책을 준비 중이다.

한편 현대경제연구원은 ‘호르무즈해협의 위기와 경제적 파급 영향’ 보고서에서 미국·이란 간 전쟁이 발생해 1년 이상 장기화되면 1, 2차 오일쇼크 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우선 “전쟁이 6개월 이내에 끝나면 국제유가는 평균 160달러 내외가 되고, 세계 경제성장률은 3.4%, 국제물가는 4.5%를 기록할 것”이라며 “국내 성장률은 3.3%로 하락하고 물가 상승률은 5.5%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1년 이상 장기화되면 국제유가는 210달러까지 폭등하고 세계 경제성장률은 2.9%로 하락할 것”이라며 “국내 성장률도 2.8%로 떨어지고 물가는 7.1%로 치솟으며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78∼80년 2차 오일쇼크 당시에는 세계 성장률이 3.9%(79년)에서 2.4%(80년)로 낮아졌고, 국내 성장률은 6.8%에서 -1.5%로, 물가는 18.3%에서 28.7%로 요동쳤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