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호지역도 지정만 해놓고 관리는 “나몰라라”
입력 2012-01-10 18:41
우리나라 자연보호지역 국토의 10.9%… OECD 평균에 크게 하회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르면 올해부터 2015년까지 국립공원 3∼4곳을 추가 지정할 계획이다. 무등산과 금오산이 가장 먼저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질공원 2곳도 새로 인증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습지보호지역, 생태·경관보호지역도 꾸준히 확대할 방침이다. 산림청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을 지정해 성과를 거둔 후 이를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보호지역 상당수가 지나친 이용과 개발압력에 취약하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지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최를 위한 무주리조트 개발로 덕유산국립공원 북쪽 사면 숲 200만평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 환경운동가는 “당시 스키장 개발은 한국의 국립공원 정책과 이념을 10년 정도 후퇴시켰다”고 말했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 해창산은 새만금방조제를 쌓는 돌로 변해버렸다. 쥐가 치즈를 갉아먹듯 중장비가 해창산을 야금야금 깎아내더니 결국 산이 통째로 없어졌다. 2010년 말에는 10년 만에 이뤄진 공원구역 재조정 결과로 전국 국립공원의 육지 면적이 북한산 면적만큼 줄었다. 이런 사례는 국립공원 수난사의 일부에 불과하다.
◇보호지역의 수난과 확대=이제는 산림유전자원보호지역인 가리왕산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파헤쳐질 위기에 처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연환경보호지역 면적은 전 국토의 1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6.4%에 크게 못 미친다. 면적도 적지만 보호수준이 낮고, 핵심지역의 이용압력이 높아 훼손우려가 크다. 국립공원이나 습지보호구역 내 사유지 비율이 높지만 예산부족으로 사들이지 못한 채 방치하거나 아예 보호구역에서 제외해 버리는 사례도 많다. 그 결과 지난 20년간 농지는 15.9%, 갯벌은 20.4%, 산림은 2.1% 감소했다. 40년 전 국토의 70%가 산지라고 배웠지만, 지금은 64%로 줄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생물다양성과 자연·문화적인 보호와 유지를 위해 특별히 지정된 지역으로 법 또는 기타 효과적인 수단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곳’으로 보호지역을 정의한다. 우리나라 보호지역의 종류는 국립공원, 도·군립공원, 생태·경관보호지역, 습지보호지역, 야생동식물보호구역, 특정도서(이상 환경부 관할), 산림유전자원보호지역, 재해방지보호구역 등 산림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청 관할), 그린벨트, 해안습지보호지역, 해양보호구역(〃 국토해양부 관할), 천연보호구역, 천연기념물, 명승지(〃 문화재청 관할) 등이 있다.
보호지역이 수난만 겪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개발과 보전의 갈등 속에 국가의 보호지역 정책과 제도는 새롭게 정비되고 성숙했다. 녹색연합 서재철 자연생태국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보호지역의 성찰과 미래’ 심포지엄에서 “동강의 댐건설 계획을 막아내고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좋은 선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백두대간 보호구역, 왕피천 생태경관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확대와 민통선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지정 등은 성공사례”라고 덧붙였다.
◇보호지역 중복지정 등 관리난맥상=국립공원이 육지보호지역 면적의 약 44%, 백두대간보호구역이 육지보호지역 면적의 약 18%로 이 둘이 보호지역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백두대간보호구역 안에서도 국립공원 면적이 48%로 두 보호지역이 겹친다. 산림청 김현수 산림환경보호과장은 같은 심포지엄에서 “백두대간 개발수요 증가로 훼손은 여전하다”면서 “관리주체의 2원화에 따른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처간 협조체계가 미흡하니까 자원조사와 생태계 모니터링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자료의 활용도가 낮다. 인력과 예산은 산림청이 풍부하지만, 생태계가 우수한 보존대상 산지는 국립공원에 몰려 있다. 산림과학원 연구위원들은 지리산이나 설악산에서 체계적 장기모니터링을 하고 싶지만 현재로선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김 과장은 “주기적인 조사, 연구,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지대 조우 교수는 국립공원 관리의 문제점에 대해 “자원관리부문에서 생태계 조사, 외래종 조림지 관리, 훼손지 복구, 역사문화자원 관리역량 등이 모두 미흡하다”고 말했다. 탐방객 관리측면에서도 정상탐방 집중현상, 성수기 특정지역 집중에 대한 관리능력 부족, 비개방 탐방로(샛길) 이용 단속 한계 등이 지적됐다. 조 교수는 이어 “국립공원 내 사유지 비율이 30%로 매우 높지만 정부의 사유지 매입은 소극적”이라며 “특히 최근 케이블카 건설계획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했다.
국립공원과 백두대간 보호구역 모두 시설관리 측면에서 훼손 탐방로의 복구가 제대로 안되는데다 용도폐기된 도로의 복원 작업이 미흡하다. 핵심 산림생태축인 백두대간과 비무장지대(DMZ) 일원의 훼손면적 대비 복원율은 현재 25%에 불과하다.
산림청은 복원율을 2020년까지 75%로 높일 계획이다. 백두대간은 또한 47개의 포장도로와 폐광산 등으로 평균 8㎞마다 단절돼 있다. 그러나 폐도 복원에는 돈이 많이 들어 본격 추진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보호지역의 보전과 확대, 대안은=국립공원의 경우 가장 강력한 보존지침이 적용돼야 하는 자연보존지구가 면적 비중도 적은데다 다른 용도 지구와 큰 차별성이 없다. 더 이상 훼손을 막기 위해 자연보존지구의 면적을 확대하고 보호 강도를 더 높여야 한다. 조 교수는 “자연보존지구에 대해 탐방예약제와 탐방 총량제를 실시해야 한다”면서 “등산객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관리예산 및 인력 확보가 필요하지만 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지리산 칠선계곡, 노고단 야생화 복원지, 북한산 우이령, 점봉산 곰배령 등 탐방예약제의 성공적 실시사례도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 전 지역에 대해 탐방예약제와 총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부산대 김동필 교수 등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미국의 국가공원청(NPS)처럼 일원화된 공원관리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NPS는 여러 종류의 보호지역 대부분을 관리한다. 김 교수는 “최소한 중복지정을 교통정리하고 보호지역의 등급과 통계만이라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