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태정] 돌아오는 감사
입력 2012-01-10 18:10
말(言)은 집비둘기와 같아 반드시 돌아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말을 많이 쓰고 어떤 말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랄까.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을 조사해 보니, ‘땡큐(Thank You)’가 28%로 1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오브리가도(Obrigado)’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유독 많이 들리는 단어가 ‘아리가토(ありがとう)’이다. 우리나라 여러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 또한 ‘감사합니다’이다.
KBS 개그콘서트에 ‘감사합니다’ 코너가 있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 놓고 웃기에 적합하다. 단순하고 재미난 율동과 귀에 속속 감기는 음률이 유쾌해서 절로 따라 하게 된다. 여기에 코믹한 반전 스토리가 더해져 웃음을 유발한다. 절망적이거나 난감한 상황이 오더라도 전화위복이 되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다. 이 프로를 즐겨보는 이라면 일상에서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도 감사함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항상 감사하기란 쉽지 않다. 일상이 힘들면 따뜻한 말 한마디 하기가 힘들어진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말을 하기 위해선 전기스위치를 오프(OFF)에서 온(ON)으로 딸깍하고 누르면 어둠이 걷혀지고 밝아지듯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진실한 생각이 담기지 않은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
지난해에 회사에서 준비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전통 장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 분이 나이 마흔 넘어 배움을 시작한 한산모시짜기 중요무형문화재 방연옥 선생이다. 전수교육관에서는 묵묵히 모시를 짜는 그분을 보며 진정 감사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고통의 심연 속에서 건져 올리는 삶의 결정체가 아름다웠고 그 속에 감사의 삶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분들의 생활은 고된 노역의 연속이었다. 태모시를 이로 가늘게 쪼개는 일을 평생 반복하다 보니 입술과 혀에 굳은살이 생겼다. 더운 여름에도 콩풀을 벳솔로 날실에 골고루 먹여 말릴 때 왕겻불을 피워대니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된다. 어떨 때는 정신까지 혼미해진다고 한다. 이렇게 힘든 걸 왜 배웠나, 후회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분들의 표정은 맑았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좋고, 모시옷 해서 입은 분들의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으면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분들을 만난 뒤 감사의 조건을 다시 정했다. 부족하기에 일보 전진할 수 있어 감사하고, 조건이 미흡하기에 노력을 배가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좋은 말을 되풀이하면 자신의 것이 된다고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그러면 그 ‘감사’가 먼 훗날 돌아와 내 존재에 대해 ‘감사’하게 여겨진다는 생각 그 자체로 ‘감사’할 일이다.
안태정(문화역서울284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