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양기호] 일본 정치와 하시모토 현상

입력 2012-01-10 18:11


잃어버린 20년과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고민하는 일본은 2012년 새해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1000조엔이 넘는 국가부채, 10%로의 소비세 증세안과 여당의원 탈당, 엔고에 시달리는 기업, 중국에 밀려 이등국가로 떨어지는 국제위상, 일본군위안부를 둘러싼 한·일 갈등, 뭐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사회의 혼돈상태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귀결되곤 한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한국시민은 별로 없다. 최근 5년간 6명이나 바뀐 인물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같은 의원내각제라고 해도 영국이나 독일 총리는 강력한 대통령제에 가깝다. 원래 의원내각제는 강한 내각을 전제로 한다. 총리는 여당의원과 관료에 대하여 절대적인 지휘권을 자랑한다. 이에 비하여 대통령제는 3권분립에 기초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이 약하다. 한국의 강한 대통령제와 일본의 약한 총리제는 원래 모델에서 많이 벗어난 셈이다.

리더십 없는 정체 상황 지속

천황제 국가로 출발한 메이지일본은 내각을 그저 관료, 군부와 함께 천황대권을 보좌하는 기관으로 보았다. 전후에도 총리는 내각의 지휘통제권을 지닌 것이 아니라 각 대신의 우두머리 격이었다. 정치주도를 내세운 민주당 정권에서도 총리가 대신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임면권뿐이다. 각 성청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신이 총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파면하는 방법 말고 달리 제재수단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장기정체로 답답하고 무기력에 젖어있는 일본 국민들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기세이다. 근본적인 정치제도 개혁을 원하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 총리를 선출하는 직선제가 그것이다. 총리에 대권과 임기를 보장함으로써 고칠 것은 고치는 강한 리더십을 열망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총리는 적어도 4년 이상 해야 한다는 응답이 41%에 달했다. 5년 이상도 19%나 되고 3년 이상은 30%였다. 전후 총리 임기는 너무나 짧았다. 32명 가운데 재임 3년을 넘긴 총리는 6명에 불과하다. 총리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도 결단력이 63%로, 2위인 책임감보다 2배 이상 높다. 총리로 바람직한 인물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The Japan that can say No)’을 쓴 우익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이다. 2위는 젊고 잘생기고 인기 높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다. 3위는 구조개혁을 성공시킨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이다.

하시모토 시장은 선거공약으로 오사카도(大阪都) 구상을 내놓았다. 오사카부(大阪府)와 오사카시(大阪市)를 합쳐서 도쿄도(東京都)와 같은 광역권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자신이 오사카부 지사일 당시 오사카 시장이 통합안에 반대하자, 지사 자리를 포기하고 오사카 시장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오사카부 현 지사도 자신이 만든 정당후보를 당선시켰다. 오사카도 구상은 탄력을 받아서 추진될 예정이다. 그는 오사카에서 시작하여 일본열도를 개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인기스타가 된 하시모토 시장을 영입하고자 여야당 불문하고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총리 직선제 등 개혁 열망

2012년은 정치의 한 해이다. 한국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선거나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였고 한국도 벌써부터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열기에 빠져들고 있다. 한반도 정세도 불안정하고 유럽 금융위기 등 세계경제도 위기속이다. 난세에 인물이 나온다는 격언이 새롭다. 난국을 이겨내고 강한 리더십으로 새 세상을 만들 ‘대물(大物)’을 기다리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양기호 교수(성공회대·일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