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선물은 원한마저 누그러뜨린다
입력 2012-01-10 18:12
이곳 몬트리올은 나무가 흔한 지역이라 목조건물이 많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60년 된 2층 목조건물이다. 2층에는 우리 가족이 살고 있고, 아래층에는 몬트리올 토박이 부부가 예쁜 딸 둘과 함께 오손도손 살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재건축은 했어도 두 번은 했겠지만, 이곳은 한번 건물을 지으면 적어도 100년은 간다고 하니 그냥 입이 딱 벌어질 따름이다.
다 좋은데 문제는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층간소음이다. 얼마 전, 곤히 새벽잠을 청할 때에 쾅쾅 소리가 나며 집이 흔들리는 충격을 느낀 적이 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눈을 떴다. 약한 지진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지진인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자초지정은 이러하다. 나는 한 번도 내 코고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우리 가족의 말에 따르면 내가 코를 곤다고 한다. 어떨 때는 코 고는 소리로 집 전체가 울린다고 가족들이 나를 몰아세우는데, 내 코고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억울할 감도 있다. 그런데 그날 새벽, 나는 집 전체가 울리도록 코를 골았고, 이 소리에 아래층에서 잠이 깬 몬트리올 아저씨가 홧김에 벽을 몇 번 친 것이었다. 체구가 나의 세배는 될 정도로 거구이니, 진도 2-3 정도의 충격을 느낄 만 했던 것이다. 어찌나 미안하든지 그날 이후로 나는 침실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3살 난 철부지 막내딸과 10살 난 아들을 비롯하여 우리 식구가 내는 총체적인 소음은 아래 층 사람들의 생활리듬을 자체를 바꾸어 놓고야 말았다. 본래 아래층 사람들은 저녁 8시 30분이면 잠을 청하고 아침 6시 이전에 일어났는데, 이제는 우리하고 비슷하게 저녁 10시는 되어야 잠을 자고 아침 6시 30분이 되어야 일어난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할까 고심을 하다가, 아내가 두 번에 걸쳐, 그러니까 추석과 크리스마스 무렵에 김밥과 잡채 등 한국음식을 해다 주었다.
나중에 여기 살고 있는 한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된 경우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뜻에서 선물을 하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래층 사람들로부터 카드를 받고보니 아내와 나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선물이 갈등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막의 기독교인들도 터득하고 있던 삶의 지혜였다. ‘사막의 철학자’ 에바그리오스는 선물이 반감이나 적대감 혹은 원한마저도 누그러뜨린다고 하였다. 동생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은 까닭으로,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복수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자, 에서는 군사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죽음으로 응징하려 했다(창세기 33장 1절).
하지만 야곱은 극진한 선물을 통해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창세기 33장 8∼11절). 에바그리오스는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야곱은 가축떼를 선물함으로 에서의 마음을 샀다고 했다. 나아가 사막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 수도자들은 가난해서 선물할 물건이 없으니, 식사에 초대하여 음식을 나눔으로써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사막 수도자들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서로를 초대하던 좋은 풍습을 갖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의 예를 따라서(창세기 18장), 사막 기독교인들은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을 거룩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에바그리오스는 선물이 화를 누그러뜨린다는 현자 솔로몬의 잠언도 언급한다(잠언 21장 14절). 그런데 식사초대나 선물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인간관계의 갈등은 기도의 장애물이어서 깨끗한 기도를 방해한다. 그러므로 기도를 올바로 바치기 위해서라도, 갈등이 해소돼야 하는 것이다. 새해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기도를 바치고 싶은가? 식탁에의 초대나 선물을 통해 그 누군가의 화를 누그러뜨려보자. 그리하여 보다 깨끗한 기도를 하나님께 바치자.
(한영신학대 교수·캐나다 몬트리올대 초청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