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봉투’ 추가 폭로에 계파 갈등까지… 한나라 ‘패닉’

입력 2012-01-09 21:35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검찰 조사에서 2008년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를 건넨 당사자로 박희태 국회의장을 지목하면서 당이 ‘패닉’ 상황에 빠졌다. 한쪽에선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다른 쪽에선 “이대론 총선 못 치른다”며 아우성이다. 난파 직전의 배가 길을 잃고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고 의원에 이어 9일 2008년 전대 당시 박 의장 측 인사가 서울지역 30개 당원협의회 사무국장에게 50만원씩 돌리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당은 ‘전면 수사’ 공포에 휩싸였다. 정몽준 전 대표도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 ‘2008년 전대 출마 당시 돈 선거 물증을 갖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이야기들이 그때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당이 어렵고 살아야 하는 때이니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다음에 해도 되지 않을까”라며 즉답을 피했다.

여기에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전혁 의원이 폭로한 ‘2010년 전대 당시 1000만원 봉투 살포’ 등도 검찰이 성역 없이 수사해 달라고 촉구한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당이 갈피를 못 잡고 해법이 제각각이다. 대국민 사과 여부를 놓고 비대위 회의에서는 즉각 사과론(김세연 주광덕 비대위원)과 신중론(김종인 비대위원·권영세 사무총장)이 맞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대위는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결론을 내는 쪽으로 겨우 방향을 잡았다.

표밭을 일구는 현장은 총선 걱정이 태산 같고 절박하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그렇지 않아도 부패한 당이란 인식이 있는데 더욱 썩은 당이 됐다. 총선 치르기 더 힘들어졌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쇄신파와 수도권 의원을 중심으로 재창당론이 커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 쇄신파 의원은 “당을 해체하고 재창당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쇄신파도 “당명을 포함해 모든 것을 다 바꾸는 재창당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친박근혜계 구상찬 의원도 “서울과 수도권은 패닉 상태”라며 “이대로는 안 된다. 친이·친박을 떠나 재창당에 공감하는 의원이 많다”고 전했다.

쇄신파 주축의 재창당 모임은 이날 오찬회동을 갖고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비롯된 위기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기로 했다.

당의 고민이 더 깊어지는 것은 벌써 책임론을 들먹이면서 계파 갈등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몽준 전 대표는 “한나라당이 지리멸렬하게 된 원인은 친이·친박 간 고질적 계파갈등에 있고 그 책임은 수장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에 이어 김종인 이상돈 비대위원의 사퇴를 거듭 촉구하면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압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용화 광주·전남 지역발전특별위원장은 이날 “최근 박 위원장에게 호남 포용 정책을 설명하고자 면담을 요청했으나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외면당했다. 한나라당이 쇄신한다고 하지만 호남은 없었다”며 전격 탈당을 선언했다. 당내에선 탈당 도미노 사태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