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돈봉투 일파만파] 박근혜 “당헌·당규 지켰으면 이렇게 안돼”

입력 2012-01-09 21:41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이명박 정권과의 ‘단절’ 수순에 들어갔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당과 자신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그 기치로 ‘구태 정치 및 과거의 잘못된 정치 관행과의 단절’을 내걸었다. 그리고 박 위원장은 꽤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회의에서 “당헌·당규가 굉장히 엄격하게 돼 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엄격히 만들고 (제가) 그대로 실행했다”며 “당헌·당규를 칼같이 지켰으면 한나라당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2003년 차떼기 사건 이후 당 대표를 맡아 엄격한 윤리의식을 강조하며 당헌·당규를 만들었지만, 18대 국회 들어 당 지도부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작금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인식이다. 한마디로 ‘현 정권 책임론’이다. 비대위 출범과 동시에 외부 출신 비대위원들이 쏟아낸 이명박 정권 실세 퇴진론과 궤가 같다.

병(病)의 원인을 이처럼 진단함에 따라 이젠 ‘박근혜식’ 처방이 나올 차례다. 그는 “이번 일로 인해 발목 잡혀 우리의 쇄신을 멈추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는 당내 반발에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는 인적 쇄신’에 돌입하겠다는 것이다. 전날 정몽준·홍준표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가 모여 김종인·이상돈 비대위원의 사퇴를 요구한 데 대한 답변도 된다.

이준석 비대위원은 MBN TV에 출연해 “비대위가 고승덕 의원 외에 돈 받은 의원은 스스로 고백하라고 촉구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구태와 단절 없이는 (당이) 침몰하게 돼 있다”고 했다.

구체적 방법에서 일단 재창당에는 부정적인 기류가 여전하다. 박 위원장은 “반드시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을 이뤄내 국민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구태 정치의 범위를 박 위원장이 어느 선까지 볼지가 관건이다. 비대위가 2008년 전당대회뿐만 아니라 2010년 전당대회, 18대 비례대표 공천까지 포함시키기로 함에 따라 쇄신 대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거의 대부분이 이 기간 당권을 잡은 친이명박계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권영세 사무총장은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과 전화통화를 갖고 18대 비례대표 돈 공천 의혹을 제기한 경위 등을 들었다. 인 전 위원장은 “구체적 사례를 본 게 아니어서 입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받을 ‘칼’은 4월 총선을 앞둔 만큼, 공천 탈락이 유력하다. 2008년 MB정권 등장 이후 친박근혜계가 대거 낙천된 ‘공천 대학살’이 4년 만에 공수(攻守)가 뒤바뀌어 이뤄질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친이계가 이탈할 경우 한나라당은 쪼개지는 것이다. 분당 사태다.

따라서 검찰 수사는 박 위원장에게 ‘명분’을 줄 것으로 보인다. 황영철 대변인은 “고승덕 의원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수사의뢰가 이뤄져 검찰이 각종 의혹을 어떻게 판단할지 고민할 텐데, 그 고민에 길을 터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미래 권력의 지향점에 따라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특별검사 및 국회 국정조사를 선제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과 박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언제 할지 등은 사실 ‘기술적인 부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게 나오기도 전에 박 위원장의 칼에 다수의 친이계는 내상을 입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민수 기자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