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前 미 국무장관 “北,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 때문에 붕괴 가능성”

입력 2012-01-09 19:19


헨리 키신저(89) 전 미국 국무장관이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해 날카롭게 언급했다.

키신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전 미국에서 펴낸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원제 ‘On China’·민음사)에서 “북한은 스스로를 공산주의 국가로 선포했지만 실제 권력은 단 한 가족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며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11년 현재, 이 나라를 다스리는 가족의 우두머리는, 국제 관계의 경험은커녕 공산주의식 관리의 경험조차 전무한 스물일곱 살의 아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예측할 수 없는 혹은 알 수 없는 요소들 때문에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런 때가 오면 각국의 행동을 조절하기란 너무 늦어 버리거나 너무 복잡해져 버릴 것이다”라며 “그러한 결과가 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은, 중·미 대화의 기본이 돼야 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및 남북한을 포함하는 6자회담의 가장 중요한 일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신저는 이 저서에서 김일성의 6·25전쟁 발발을 둘러싼 중국과 소련의 두뇌싸움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중국 국경에 미군이 자리 잡고 있는 것보다 마오쩌둥이 한층 더 싫어할 시나리오는 만주에 (김일성) 임시정부가 들어서 거기 사는 조선족과 접촉하고 일종의 주권을 주장하며 시도 때도 없이 한반도 쪽으로 군사적 모험을 감행하는 것임을 스탈린은 알고 있었다.”(182쪽)

소련의 스탈린은 그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개입을 촉구했고, 중국은 전쟁을 치른다면 북한이 미국 손에 넘어갈 것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해 북한 패배를 막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게 됐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결국 휴전으로 마무리된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얻은 나라는 중국이 됐고 최대의 패배자는 소련이 됐다”고 못 박았다. 그는 “한국전쟁은 새로이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을 군사 강대국인 동시에 아시아 혁명의 중심으로 확립해 주었다”(187쪽)며 “전쟁을 위해 소련이 책임졌던 중국의 재무장은 결국 짧은 시간 내에 중국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188쪽)”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중국의 대외전략은 기본적으로 방어에 있었다”며 “다른 주변 이민족이 뭉쳐서 중국에 도전하는 일만 없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뿌리 깊은 전통에서 나타난 것이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이고 이것이 지금까지도 중국 외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키신저는 1971년 7월 9일 핑퐁외교를 앞세워 죽(竹)의 장막을 걷고 중국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수십 차례 중국을 오가며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장쩌민(江澤民) 등 중국현대사를 이끈 지도자와 직접 대화하고 교류했으며 73년 베트남전 해결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