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윤태일] 지역의 작은 축제도 소중하다

입력 2012-01-09 18:09


“주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면서 신명을 나누는 동네 축제 더욱 북돋아줘야 한다”

이 춥고 황량한 겨울에 무슨 축제타령인가 하겠지만 지금 전국은 겨울축제가 한창이다. 지난 세밑과 새해 첫날에 바닷가와 산을 중심으로 해넘이 해맞이 축제가 전국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겨울축제의 고장은 역시 강원도다. 이미 시작된 평창의 송어축제를 비롯하여 화천 산천어축제, 인제 빙어축제, 태백산 눈꽃축제 등이 추운 겨울을 뜨겁게 달군다. 특히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산천어 축제를 CNN에서는 캐나다의 북극광, 미국 옐로스톤의 겨울 온천과 함께 ‘겨울의 7대 불가사의(7 Wonders of Winter)’로 꼽아 소개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집계에 의하면 현재 전국적으로 1500개가 넘는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전국에서 매일 평균 5개 정도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과 비교하면 한국에 축제가 많은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텍사스 한 개 주에만 1000개 이상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축제가 이렇게 성행하는 이유는 주로 경제적 효용성 때문이다. 축제가 이제는 감각재이며 경험재적 성격이 강한 문화상품 혹은 관광상품이 되었다. 사람들은 축제라는 문화상품을 구매하여 짜릿하고 흥겨운 체험을 소비한다.

그 결과 축제는 관광 목적지 브랜딩(destination branding) 혹은 장소마케팅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의 일등공신이 된다. 인구 3만명의 화천만 해도 100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몰리는 산천어 축제가 화천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축제는 이러한 경제적 효용성 외에도 여러 가지 문화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바보제’를 쓴 신학자 하비 콕스에 따르면 축제는 우리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마련한 특정의 시간이다. 축제에서는 흥청망청하는 낭비적 요소를 억제할 수 없다. 노동이 전혀 없는 기간을 주기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노동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 바로 축제다. 따라서 축제를 통해 자기표현, 놀이 및 오락성 제공, 사회통합, 문화전수, 사회적 정체성 확인 등의 문화적 기능이 수행된다.

그런 의미에서 축제를 꼭 경제적 관점에서만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전국적 규모의 축제 뿐 아니라 지역의 작은 축제가 상당히 많다. 서울 마포의 도화동 복사골축제, 홍천 찰옥수수축제 같이 동 단위나 읍 단위의 작은 동네축제들이다.

이들 축제는 외부의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찾지는 않는다. 주로 지역주민이 참여한다. 유명 가수나 연예인의 대규모 공연은 없다. 그 지역의 직장인밴드나 지역문화센터의 벨리댄스 수강생들, 색소폰 동호회 등 주민들이 공연 하고 친지들이 환호한다. 그리고 노래자랑이나 장기자랑을 통해 대상으로 쌀 한 포대를 받으면 으쓱해진다. 축제장소에는 전통장터처럼 가판대가 설치되어 지역 특산물 등의 판매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경제적 기능도 수행한다.

어떤 의미에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대규모 축제는 지역주민에게 축제의 장이 아니라 노동의 장이다. 단지 축제라는 문화상품을 소비하러 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고된 노동이 집약적으로 이루진다. 물론 그들도 다른 곳으로 축제를 소비하러 갈 것이다. 하지만 축제의 다양한 문화적 역할은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동네의 작은 축제야말로 본래적 의미의 축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2012년 문화관광 축제를 선정 발표했다. 모두 45개의 ‘2012 문화관광축제’를 선정해 관광진흥기금 67억원을 비롯하여 해외 홍보와 축제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고 한다.

대규모 축제를 축제 브랜딩의 관점에서 국제적인 관광자원으로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문화의 차원에서 지역주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면서 신명을 나눌 수 있는 동네의 작은 축제들도 소중히 여기고 북돋아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윤태일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