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다시, 새벽바다를 향한 항해

입력 2012-01-09 18:05


1월 13일은 미주 한인의 날이다. 나는 부족하지만 사랑하는 김영진 국회의원과 함께 미 공화당의 조지 알렌 전 상원의원과 미주한인재단 윤병욱 총회장,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 워싱턴 지회장 헤럴드 변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여 미주 한인의 날을 제정하는 데 조그마한 기여를 한 적이 있다. 또한 미국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여 한인들의 위상을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서훈받기도 하였다. 미주 한인의 역사는 피눈물의 역사였다. 1902년 3월 22일, 새벽의 칼바람을 가르며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해 하와이에 닻을 내린 갤릭호의 고동소리는 미주 이민사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거친 파도와 해일이 몰아쳐도 뒤돌아보지 않고 꿈의 항해를 하였다.

서러운 달빛 쏟아지던 사탕수수 밭과 오렌지 나무 아래서, 또 봉제공장, 가발공장, 주유소, 세탁소 등에서 눈물을 쏟으며 일했고,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소망 삼아 매일 희망의 꽃씨를 뿌렸다. 그 결과 지금은 일백 수십만 명의 한인들과 4000여개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는 눈부신 번영을 맛보았다. 어찌 미주 한인들의 역사뿐이겠는가. 본토에 남아 있던 우리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조국강산은 서구 열강과 일제의 먹잇감이 되어 갈기갈기 찢겼고 백성들은 짐승처럼 끌려다니며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 절망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직 미래의 꿈을 바라보며 고난의 바다위에서 항해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경제, 문화대국으로 비상하고 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한일병합을 통하여 나라를 통째로 빼앗겨 버리는 역사의 폭풍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3·1운동의 정신적 기초가 되어 독립운동을 주도하며 항해를 멈추지 않았다. 붉은 공산제국의 야욕으로 발발한 6·25전쟁의 남침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기도의 등불을 끄지 않았다. 새벽마다 예배당의 차가운 마룻바닥에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기도했다. 그 결과 경제개발 5개년계획, 새마을운동과 더불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누가 뭐라 해도 민족의 고난과 함께하며 거친 바다를 항해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좌절과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자. 서로를 깎아내리고 조롱하는 빈정거림을 멈추자.

2012년의 태양이 떠올랐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의 검은 그림자를 뒤돌아보며 절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서로 공격하고 무너뜨리려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저 에메랄드빛 꿈의 바다를 향하여 돛을 올리자. 꿈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다시 붉은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바다를 향하여 가슴 시린 뱃고동 소리를 울리자. 꽁꽁 얼어붙은 땅이라 할지라도 온 몸과 영혼을 바쳐 꿈의 첫 삽을 뜨자. 겨울바람 사이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처럼, 과거가 아닌, 내일을 향하여, 뒤돌아보는 회한의 눈동자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타오르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