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태일 (7) ‘뇌물’의 부끄러움에 사표 던지고 새삶 도전장
입력 2012-01-09 18:04
누구나 단 한 번의 삶을 산다. 현존하는 인물 중 강모균 장로님보다 더 기준 잡힌 삶을 살려고 애쓰는 이를 나는 보지 못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때로는 그 이상까지 온전히 타인의 고통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분의 절대적인 기도의 지원이 있기에 나는 지금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소리칠 수 있다.
목회를 하기 전 갑자기 답답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기도를 부탁하고 싶을 때가 더러 있었다. 한데 교회 담임목사님이나 구역 성도에게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참으로 난처했다. 그래서 화재신고 119에 하듯이 ‘긴급 중보기도 119’를 설립해야겠다는 평소의 소원이 있었고 드디어 2001년 5월 17일 ‘중보기도단 7000클럽’을 창립하게 되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님이 총재직을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신현균 목사님이 대표회장을 맡아 주셨다. 큰 어른 두 분이 힘을 모아주셔서 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특히 신 목사님께서 소천하신 후엔 다음 대표회장으로 윤석전 목사님이 흔쾌히 용기를 내주셨다. 이로써 중보기도단은 큰 힘을 얻었다. 이런 어른들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지혜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이라고 확신한다.
이에 그동안 대쪽 같은 믿음으로 일관해 오신 강 장로님의 절대적인 하나님 중심 믿음이 고스란히 녹아든 국내 유일의 중보기도단 7000클럽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연 13만건, 월 1000건이 넘는 기도가 요청되고 하나님의 응답이 이뤄지고 있다. 중보기도를 진행하는 중에 엄청난 이적과 기적들이 속출하고 있다. 각종 난치병 환자가 치료되고 우울증에서 고침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실수로 농약을 먹은 전도사님이 치료되는 등 참으로 놀라운 초대교회의 기적들이 넘쳐나고 있다.
수많은 일들이 있고 사업이 있지만 중보기도단 7000클럽이 설립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너무나도 감사하다. 특히 기도응답 중에는 마음에 소원만 해도 눈앞에서 즉시 응답되는 경우도 있고, 기도한 후 한참 있다가 응답되는 경우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절묘한 기도응답에 대해 간증하고 있다.
3년 만기를 채우고 병장으로 제대한 나는 곧바로 숙모가 운영하는 실크공장에 자재담당으로 취직을 했다. 약 2년간 참으로 열심히 믿음생활을 지키며 일했다. 그런데 자재담당을 하다 보니 거래처에서 자신의 물건을 팔아달라며 이런 저런 선물과 뇌물을 손에 쥐어주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무의식적으로 이런 걸 한두 번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점점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젊은 나이에 이런 뇌물을 받아 무슨 성공을 할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던 내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의 상황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런 갈등 속에 결혼을 했고 3개월도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좋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며 정신 나간 놈이라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직장을 뛰쳐나온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하루에 10만원 이상을 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한 책 세일즈맨 때문이다. 땀 흘린 만큼 수익을 올린다는 그의 자랑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소정의 교육을 받고 책 판매를 하러 나섰다. 하지만 의욕만 앞섰지 쉽지 않는 일이었다. 고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고난은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는 값진 열매로 맺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