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竹, 선비와 만나다… 학고재갤러리 ‘소호와 해강의 난죽’ 전시회
입력 2012-01-08 18:30
예부터 군자의 품성을 지녔다고 해서 ‘사군자(四君子)’라고 불린 매란국죽(梅蘭菊竹)은 올곧은 선비정신의 상징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난은 깊은 숲 속에서 나서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스스로 향기를 뿜어내기에 중용의 도에 비유되고, 대나무는 곧게 자라 휘어진다 해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특징이 있어 강직함과 절개의 이미지로 대변된다.
사군자화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거나, 선호도가 높은 식물이 있기도 했는데 조선시대에는 매죽(梅竹)으로 사군자를 대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이르러서는 난죽(蘭竹)으로 옮겨갔다. 구한말 난죽 그림의 최고봉을 꼽으라면 소호(小湖) 김응원(1855∼1921)과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을 빼놓을 수 없다.
소호는 예서와 행서에 뛰어났고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석파란’을 계승해 ‘소호란’으로 일컬어지는 묵란의 새 경지를 연 작가다. 또 해강은 조선시대 묵죽을 발전시켜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고 1915년 서화연구회를 창설해 한국미술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화단에서는 이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조명이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가 11일부터 2월 19일까지 여는 ‘소호와 해강의 난죽(蘭竹)’은 두 작가의 난과 대나무 그림을 통해 한국 근대기 서화의 가치와 의미를 살펴보는 전시다. 학고재가 2009년부터 시작한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획전으로 소호 작품 20점, 해강 작품 13점, 두 사람의 합작품 1점을 선보인다.
“이것은 그윽하고 곧은 한 종류의 꽃/ 알려지지 않고 그저 고요한 산속에/ 땔 나무하러 가는 길에 뵐까 두려워/ 다만 높은 산 하나를 그려서 막았네.” 중국 청나라 문인 정섭(1693∼1765)의 시를 적은 소호의 ‘석란도(石蘭圖)’는 이하응의 난 그림을 계승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새로운 구도법을 사용했다. 난초 줄기가 날렵하고 붓질은 활달한 것이 특징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니 맑은 그림자 흔들리고/ 온종일 일이 없어 베개 베고 한가로이 노래 부르는데/ 가을비 내리는 소리와 같아 사람의 속됨을 치료해주네.” 해강의 ‘여우추성(如雨秋聲)’은 통죽의 중간 부분과 바람에 나부끼는 잎을 배합해 화면효과를 도드라지게 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선 굵은 그의 화풍은 대나무에 빼어났던 고암 이응로(1904∼1989)에게 이어졌다.
소호가 난을 치고 해강이 대나무를 그린 ‘묵죽도(墨竹圖)’는 의기투합한 두 사람의 예술정신을 엿보게 한다. “지금 사람 옛달 못 보았으나/ 지금 달 옛사람을 비추었으리/ 옛사람 지금 사람 모두 흐르는 물과 같으나/ 달을 보는 그 마음은 모두 같으리/ (하략)” 당나라 이태백의 시를 쓴 소호의 글씨도 나왔다. 해강의 10폭 병풍 ‘월하죽림도(月下竹林圖)’도 눈길을 끈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올해는 여러 가지 풍파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난죽 그림을 통해 향기롭고 평안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연초에 정갈한 마음으로 관람하기에 좋은 전시다(02-720-15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