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비타’ 리뷰… 에바 페론 역 맡은 정선아 보컬 돋보여
입력 2012-01-08 18:07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29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에비타’(연출 이지나)는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1919∼1952)의 생애를 다룬 화제작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삼류 배우를 거쳐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27세)에 영부인이 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과 함께 재조명됐다. 관람객들의 평을 토대로 이 뮤지컬의 장단점을 알아본다.
전체적인 평을 한다면 가격(객석 대부분을 차지하는 R석 10만원) 대비 알찬 공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에바 페론 역을 맡은 정선아의 보컬이 돋보여 극의 전개에 힘을 보탰지만 다른 남자 배우들과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남자 배우들은 반음씩 짧게 끊어서 소리를 내는 부분이 많았는데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1막에서의 당차고 야심 넘치는 페론의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정선아의 음색은 적절했다고 생각되지만 2막에서 늙고 힘없는 캐릭터를 표현하기엔 너무 날카로운 음색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저음부가 조금만 더 탄탄해지면 훨씬 큰 가능성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2막은 너무 페론 혼자서 극을 이끌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클라이맥스로 치달을수록 각 배우들의 풍부한 감정 표현이 드러났으면 관객들이 더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체 게바라의 캐릭터는 사실 익히 알려져 있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에서 보던 이미지나 자서전 등 각종 출판물에서 보던 이미지와 많이 달라 괴리감이 들었다. 물론 배우가 자신의 배역에 대해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그가 게바라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관객들이 분명 있었을 것 같다. 별이 달려 있는 모자나 카키색 야상 재킷은 게바라를 드러내는 심볼이나 다름없다. 물론 게바라를 기리는 공연은 아니므로 그가 돋보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깨끗한 흰색 재킷은 그와 잘 어울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페론을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끄는 재즈가수 역을 맡은 보컬 박선우가 3명의 남자 배우 중에서 가장 매끄럽고 뮤지컬에 어울리는 음색을 들려주지 않았나 싶다. 그의 솔로 부분은 많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이 캐릭터를 파악하기에 충분했고, 활발한 1막의 분위기에 잘 맞아 떨어졌다. 남편 후안 페론 역을 맡은 박상진의 보컬은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후반부에 부통령에 출마했다가 병마로 포기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에바 페론 스토리에 후안 페론이 조금 더 개입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2막은 좀 지루하기도 했다.
무대 장치도 다소 식상한 느낌이었다. 도입 부분에서 페론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계단을 이용한 신이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고 코러스(무용단)의 움직임도 약해지더니 결국엔 극의 후반부를 주인공 페론 역의 배우가 몽땅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마무리가 아쉬웠다.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