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종칼럼] 한나라당 간판으로 버틸 수 있을까
입력 2012-01-08 18:22
민주당이 지난 10·26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못했을 때 기자는 이 난에서 당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제1야당으로서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했으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를 내지 못할 게 빤하고, 그건 결국 불임정당이니 제1야당 간판을 내리는 게 순리라는 생각이었다.
엎친 데 덮친 악재들
예상대로 민주당은 간판을 내리고 민주통합당이라는 이름으로 신장개업했다. 글쎄, 신장개업을 했다 해도 그 당이 그 당 같기도 하지만 조금은 바뀌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조상이 큰 죄를 지어 후손이 벼슬을 할 수 없는 처지를 일컫는 폐족을 자처하며 변방으로 밀려났던 노무현의 사람들이 다시 당의 중심에 진입하여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이는 게 그 가장 큰 변화 아닐까 싶다.
이번엔 집권 한나라당이 간판을 계속 내걸고 있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 안철수 돌풍에 휘둘리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패배한 데 이어 디도스 공격 사건과 고승덕 의원의 전당대회 돈 봉투 폭로로 완전 그로기 상태에 빠진 느낌이다.
당 소속 의원들은 지금 상황에서 지역구에 가서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주민들의 얼굴을 대하기가 무섭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수도권 의원들은 백약이 무효로서 석 달 뒤에 있을 총선은 치러보나 마나라는 절망감에 빠져 있다.
한나라당은 그러잖아도 내홍에 빠져 있다.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으나 그의 비대위가 추진하는 인적쇄신과 정책쇄신을 놓고 당 내외에서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비대위의 이상돈 김종인 위원이 이상득 이재오 홍준표 정몽준 의원 등 이명박계 중진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정계은퇴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계에서는 이상돈 김종인 위원의 정체성과 전력 등을 시비하며 되레 그들의 비대위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김종인 위원은 또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여 비대위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당내 이명박계는 물론이고 보수세력들이 일제히 나서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으로서 그리 될 경우 당의 존재 의미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백약이 무효라니
이명박계에서는 또 이번 전당대회 돈 봉투 폭로도 이명박계 전 당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계를 청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주 이 난에서 얘기했듯이 한나라당은 이전의 한나라당이 아니다. 비대위가 출범하면서 간판만 한나라당일 뿐 그 내용물은 이미 박근혜당으로 바뀌었다. 비대위 구성이 그걸 예고해줬고 인적쇄신 정책쇄신이 구체화되면서 그러한 변화는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이번 돈 봉투 폭로가 그걸 더욱 촉진시킬 게 틀림없다.
박근혜의 비대위는 한나라당에 닥친 이런저런 악재들을 돌파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위해 쇄신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에 비례하여 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한 저항도 거세질 게 분명하다. 박 위원장이 그 저항을 극복하기 힘들 경우 자신이 한나라당을 떠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 저항은 극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간판으로는 총선과 대선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선다면 그 간판을 내리는 결단도 불사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 그러한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는 전부터 정당의 신장개업에 대해 삼촌이 작은아버지 된다고 달라질 게 뭐냐는 입장이었다. 또 특히 집권당이 간판을 바꿔 다는 것은 책임 정치의 일탈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대로 있다간 죽을 것 같기에 살 길 찾아 간판을 바꿔 달겠다는데 막을 재간이 없지 않겠는가. 다만 기왕 그리하겠다면 건물은 그대로 둔 채 간판만 바꿔 달거나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 정도에 그칠 일은 아니고 전혀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 국민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다.
부사장 wjba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