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승욱] 삼성전자의 낙수 효과
입력 2012-01-08 18:22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액은 164조원을 넘어 역대 최고였다. 세계적 불황으로 노키아 소니 모토로라 등 경쟁사들이 다 적자인 가운데 올린 성과여서 더 돋보인다. 각 분야를 석권하던 전성기 GE에 버금가는 위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16조원이 넘는 연간 이익은 상장 중소기업 순이익 총액의 6배가 넘는 막대한 규모이다.
그런데 이런 실적에 대한 찬사가 예전 같지 않다. ‘승자의 독주’ ‘불황 속 세계 질주’ 등의 찬사도 있고, 경영일선에 복귀하여 스마트폰을 직접 챙긴 이건희 회장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닝 서프라이즈가 원화 약세라는 환율 효과나 아이폰 도입을 늦춘 정부 덕분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삼성맨’들이 최대 규모의 승진과 보너스까지 받았지만 국내 투자나 고용 계획은 아직 없다는 이유로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는 적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러한 평가와 정서는 월스트리트 발 ‘점령시위’와 맥을 같이한다. 경기침체 때 발생하는 당연한 정서이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에 이러한 정서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정치권의 목소리는 작년 연초와 크게 달라졌다. 여당에서 보수라는 단어를 빼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철학과 신념이 없는 정치는 환경변화에 따라 급변한다. 냄비근성이 있는 한국 사회라 쏠림현상이 더욱 우려된다.
대공황기 미국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와그너법이 나왔듯이 어려운 경제 환경 덕분에 사회적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인해 사회 붕괴를 초래하는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 각 계층이 사회통합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들은 어려운 계층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정치권은 표만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철학과 정체성에 충실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성과를 평가해보자. 환율 효과가 컸기 때문이라면 다른 수출기업들도 다 그런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다른 요인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부의 보호 때문이라면, 해외에서의 실적을 설명할 수 없다.
미미한 낙수 효과도 기업을 탓할 수는 없다.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제조업의 생산유발효과가 하락하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임금이 저렴하고 무역마찰도 없던 시절에는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되므로 수출이 증가하면 국내 고용과 소비도 그만큼 증가했다.
그러나 이제는 임금 상승과 무역마찰로 해외투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어, 성과를 우리가 다 누릴 수 없다. 그리고 수출산업이 자동화되어 수출이 증가해도 고용은 크게 늘지 않는다. 10년 전에는 수출이 10억 달러 증가하면 취업자는 15명 이상 늘어났지만, 이제는 9명 정도밖에 늘어나지 않는다. 막대한 이익을 사내에 유보하고 투자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급변하는 국제경제 환경에서 언제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는 기업의 전략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세계 경제는 어두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유럽의 재정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미국의 불경기가 해소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난 10년간 10.5%의 성장률을 보인 중국마저 올해 경제성장률이 7%대로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게다가 주요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59개 나라에서 정권이 심판대에 오를 예정이고, 무엇보다 북한 정세의 불투명성이 역대 가장 높다. 이렇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치, 경제적 상황에서 국내적으로 더욱 단결해야 한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격려하고, 재계와 정치권은 모두 각자 남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과 냉정을 잃지 말아야겠다.
김승욱 중앙대 교수 경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