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어느 연주회
입력 2012-01-08 17:55
청중들은 연주회가 끝나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뜨거운 박수와 함께 일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연주자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와 고개 숙여 인사하길 반복했다. 박수는 이어졌고 그렇게 하길 대여섯 차례. 결국 연주자는 사라졌고 청중들은 아쉬운 듯 하나둘 자리를 떴다.
최근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불리는 어느 피아니스트 연주회의 마지막 장면이다. 칠순이 머지않은 그의 연주는 숨 막힐 듯했다. 악보도 없이, 현란하게 건반 위를 보이지 않을 듯 날아다니는 손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완전한 몰입으로 또 다른 세계에 진입한 듯했다. 무아의 경지에서 음악 속으로 녹아들었다고 할까.
어둠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의 손이 리스트의 소나타 b단조를 질주할 때 청중은 저 현란한 음 하나 삐끗하면 어떻게 하나 숨을 죽여야 했다. 전 옥타브를 넘나드는 고난도의 테크닉과 엄청난 집중도를 요구하는 음악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청중과 피아니스트는 하나가 되어갔다. 1시간여의 연주가 끝났을 때 그도 청중도 기진맥진하는 듯했다. 내가 그랬으니까. 청중들은 탈진해 보이는 노장의 숭고한 음악 정신에 뜨거운 사랑을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에게 앙코르를 요청하며 또 다른 몰입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 듯했다. 다만 우리가 당신의 열정에 반했노라, 당신이 쏟아낸 선율에 감사하노라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리라. 청중의 박수에 앙코르 공연으로 답하지 못할 정도로 혼신을 다한 모습이 오히려 감동적이었다고 해야 맞다.
그런데도, 그가 무대 저편으로 사라진 뒤 아쉬움이 남았다면 욕심일까. 그가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여러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앙코르 공연은 제게 무리일 듯싶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행복하십시오”라고 단 몇 마디 해줬다면 청중들은 그 연주회의 기억을 따뜻하게 오래 간직할 것이다. 혹 감동의 눈물바다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클래식 공연에서 뭐 새삼스러운 걸 요구하나”라는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무슨 철칙이나 정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자도 없이 말없이 나왔다가 한 시간여를 연주한 후 말없이 사라지는 그런 무표정한 양식에도 조용한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연주자들은 흔히 ‘음악애호가들과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 무대에 선다고 말한다. 정감어린 한두 마디, 주최 측의 간단한 인사 등이 클래식 연주의 위상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의 추운 겨울밤, 연주장까지 찾아갈 정도로 그 음악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간적 면모가 담긴 그의 목소리도, 생각도 알고 싶어 한다. 더 사랑받고 훈훈한 연주회를 위해, 담당 기획사에게 에둘러 건네 보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연주회도 비즈니스고 청중은 그 상품에 고가를 지불한 엄중한 고객이다.
고혜련(제이커뮤니케이션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