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돈봉투’ 민씨 권력

입력 2012-01-06 17:53

130년 전인 1882년 6월. 조선의 구식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임오군란이다. 신식군대, 즉 별기군과의 차별에서 비롯된 사건이지만 그 저변은 부패에 찌든 조선 정부의 무능에 닿아 있었다. 7개월간 급료를 받지 못한 구식군대에게 조정이 어느 날 조운선이 도착했다며 쌀을 배급했는데, 겨 또는 모래가 반이 섞여 있었다.

군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들은 즉각 군 재정을 맡고 있는 선혜청 당상이자 민비의 오빠인 민겸호 집을 찾아가 집안과 창고에 불을 질렀다. 약삭빠른 민겸호는 도망가고 없었다. 그의 집에선 금은보화와 고급 피륙이 쏟아졌다.

당시는 민비가 동생을 내세워 척족 정치로 나라를 말아먹던 시절이었다. 민겸호는 관직을 자기 마음대로 옮겨 다니며 국록을 축내고 일가의 안일만을 꾀한 후진국형 권력자였다. 그는 ‘돈봉투’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자였다. 국가 재정에서 빼돌린 돈으로 곧잘 민비를 찾아가 무당들에게 선심 쓰라고 돈을 내놓은 것이다.

1874년 민비가 낳은 원자가 건강하지 못하고 부실하자 무당을 불러 밤낮 푸닥거리를 했다. 무속인에게 도성 출입을 허하고, 품계를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는데 이를 부추긴 인물이 민겸호다. 그는 결국 반란 구식군대에 잡혀 난도질 끝에 죽었다.

사실 조선의 망조는 여러 가지로 꼽을 수 있겠으나 정조 이후 80여년간 안동김씨, 여흥민씨로 지칭되는 척족의 부패가 결정적이다. 지방 말단 수령자리는 물론 감역, 호군, 참봉 같은 하위직까지 돈봉투로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판을 쳤다.

민겸호에 앞서 형이자 민비의 양오라버니인 민승호도 뇌물을 가장한 정적의 손에 죽었다. 민승호의 부모, 민비의 생모와 함께였다. 돈봉투 받는 것이 습관이 된 이들은 ‘밀실에서 조용히 열어보세요’라는 말에 속아 몰살당했다. 봉투 속에 폭발물이 들어 있었다.

한데 ‘독한 민비’, 그 후로도 좌절하지 않고 민규호와 민겸호를 내세워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청과 러시아에 의탁해 가며 정권 유지에 안간힘을 쓴다. 런던에 지하철이 생기고, 뉴욕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에스컬레이터가 놓일 때였다. ‘돈봉투’ 문제가 어제의 일이자 오늘의 문제 같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