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연 기자의 건강세상 돋보기] 약가인하 점진적 실시를

입력 2012-01-06 16:44


지금 제약업계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정부의 약가 일괄인하방침에 맞서 사활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제약업계는 약가 일괄인하가 현실화될 경우 적게는 1조7000억원에서 많게는 2조5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제약업계 종사자들은 이번 사태를 충격을 넘어선 공포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12일 기존의 계단형 약가제도를 폐지하고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약과 제네릭(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의약품의 복제약) 가격을 특허만료 1년 후에는 최초 가격의 53.55%로 일괄인하 한다고 발표했다. 특허, 퇴장방지, 필수의약품 등에 대해서는 예외조항을 뒀지만 이미 등재된 의약품에 대해서도 약가인하가 적용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약가인하를 추진하면서 합리적인 약가관리를 통해 적정한 약 사용을 유도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국민의 약제비 부담을 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약가인하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일단 제약인력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실제 제약업계에서는 고시가 발효되기도 전인데 벌써 명예퇴직, 희망퇴직을 신청받는 등 구조조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재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자유선진당)은 약가인하조치로 제약업계 종사자와 그에 딸린 가족 등 60여만 명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달 15일 국회도서관에서는 ‘올바른 약가제도 개편방향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김양균 경희대 교수(의료경영학과)는 약가인하로 인해 정부에서 제시한 수준으로 매출액이 감소할 경우 제약인력 1만3641명이 감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심각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제약산업의 붕괴 위험성이다. 제약업계 전체 영업이익이 지난해 1조300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약가인하로 인한 손실은 이보다 훨씬 크다. 정부에서 의도한 대로 경쟁력 있는 몇몇 대형 국내 제약사들은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제약사들은 버텨낼 길이 없다.

여기에 한미 FTA라는 악재도 겹쳤다.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조항을 담은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제약산업은 이래저래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허가-특허연계 제도는 제네릭 품목허가를 신청할 때 허가단계에서 특허권자에게 품목허가 신청사실을 통지하고 특허침해 의약품이 시장에 나오지 않도록 방지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즉 지금과는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네릭 품목허가를 신청하면 그 사실이 특허권자에게 통보되고 특허권자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소송이 끝날 때까지 의약품 허가가 자동으로 중단된다. 제품 출시시점이 그만큼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국내 제약사는 제네릭 개발과 시판에 큰 제약을 받게 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국내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낮아지고 국내 제약시장은 자본이 충실하고 튼튼한 다국적사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약값 부담이 줄어들 수 있지만 국내 제약산업이 붕괴될 경우 외국 약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약가부담이 크게 늘어나 2∼3년 후에는 오히려 비용을 더 부담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한국제약협회의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제 다국적사 위주로 제약시장이 재편된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우리나라보다 4배 이상 약가가 비싼 곳도 있다.

그동안 제약업계가 어렵고 힘든 기술개발보다는 손쉬운 영업관리에만 힘써 온 것이 사실이다. 제약업계가 지고 있는 벗어날 수 없는 멍에인 ‘불법리베이트’도 그에 따른 부작용이다. 약가인하조치 역시 그로 인한 대가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 산업을 보호할 의무 역시 함께 갖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국내 제약산업을 보호하면서도 약가인하를 실현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일정기간 업계가 대처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두거나 점진적인 약가인하 등이 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맷집을 키우고 대처할 시간을 줌으로써 미래 성장동력으로 여겨지는 제약산업도 함께 발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조창연 기자 chyjo@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