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딛고 일어선 그들 소록도는 희망의 섬… 고통을 사랑·나눔으로 승화 한센인들의 훈훈한 겨울

입력 2012-01-06 16:54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붉은 황톳길.’ 문둥이는 차에 태울 수 없다는 이유로 버스에서 강제로 내려져 일주일을 걸어도 도착하기 힘들었던 섬이 ‘소록도’다. 이제는왕복 2차선 도로가 널찍하게 뚫렸지만 가족들과 강제로 헤어져야 했던 환자들의 설움이 남은길이다. 유전병이 아님에도 강제 낙태를 당하고 감시관의 감시 아래 자식들을 만나야 했던 한센병 환자들. 하지만 소록도에서 만난 그들의 삶에서 과거 그림자는 없었다.

섬 전체가 병원인 소록도는 여의도 1.5배 면적에 17개의 마을이 있다. 국립소록도병원 로비에는 환자들이 모여 TV를 시청하고 운동치료를 하는 등 여느 병원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현재 소록도에는 573명의 한센인이 산다. 한센병이 완치돼 몸 안에 나균은 없지만 과거 한센병을 앓았던 탓에 병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소록도에 사는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73세다. 병원에는 한센병 때문이 아니라 협심증, 당뇨병, 고혈압 등 노인성 질환의 환자들도 입원해 있다.

“김씨 할아버지와 여기 이씨 할아버지는 서로 짝꿍이세요. 운동치료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꼭 붙어 다니십니다.” 의사와 환자이기 이전에 가족이자 동네 형, 옆집 아저씨처럼 지낸다는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은 환자들마다 짝꿍이 있다고 설명한다.

“죽을병에 걸리고 사지가 없는 사람도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만 여기에 계신 분들은 단지 나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강제로 헤어져 이곳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가족이고 동지죠.”

소록도병원 4개 병동에는 160여명이 입원해 있고 질환이 없는 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생활한다. 나균이 말초신경을 공격하기 때문에 손과 발이 뭉개지고 시신경을 침범해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들이 많다. 한센병은 ‘3년은 모르고 살고 3년은 숨기고 살고 3년은 참고 산다’고 할 정도로 쉽게 알리지 못했던 병이다. 이처럼 9년(?)을 숨겨온 탓에 나균은 얼굴에 고름이 차고 손가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저는 성형하는 사람보다 눈썹 뽑는 사람이 싫습니다. 머리카락과 남은 눈썹을 세던 우리 가족들이 빠진 눈썹을 들고 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때면 사지 멀쩡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오 의료부장은 우리 몸의 눈썹 한 가닥에서도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소록도의 집은 벽면에 하늘색으로 커다란 숫자가 쓰여 있다. 그 옆에는 담당간호사의 이름과 환자의 이름이 나란히 걸려 있다.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손과 발이 불편하기 때문에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일이 종종 생긴다.

올해 81세인 황씨 할아버지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눈동자는 살로 덮여 절반 밖에 보이지 않고 그나마도 흰자위만 보여 저 자리에 눈이 있었겠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오랜만에 외부 사람을 만나자 반가움부터 표시하며 하모니카를 꺼내 든다. 신나게 3곡을 연주한 황씨 할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고 몸이 불편한 나도 이렇게 웃고 삽니다. 웃으면 행복한데 찌푸리고 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라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함께 하모니카를 불던 이웃이자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았지만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감사하고 웃으며 살겠다고 말한다.

한센병은 100년도 안 돼 감염률 0%를 기록했다. 더 이상 무서운 병도 두려워 할 존재도 아니다. 단지 우리가 가진 선입견으로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오 의료부장은 “우리 옆집에 한센병을 앓은 사람이 산다고 하면 아직도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옮지도 않고 이미 다 치료된 사람들인데도 편견으로 차별하는 것이죠. 한센병은 유전되지도 감염되지도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한센인도 우리 이웃입니다”라고 힘줘 말한다.

2012년은 임진(壬辰)년, 용의 해다. 참을성과 용기, 기백을 가진 흑룡처럼 질병과 차별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한센인에게서 대한민국 국민도 희망을 찾길 바란다.

소록도=김성지 장윤형 쿠키건강 기자 ohapp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