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정체성 논란 가열… 비대위 “대북정책 유연하게”
입력 2012-01-06 00:35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 삭제 검토에 이어 ‘유연한 대북정책’과 ‘신자유주의 손질’을 골자로 하는 정책쇄신안을 내놓는 등 ‘뜨거운 감자’를 건드리고 나섰다. 이에 따라 당 정체성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비대위 산하 정책쇄신 분과위는 5일 전체회의를 열어 2006년 개정된 정강·정책을 6년 만에 수정키로 하고 ‘재창당을 넘어선 정책쇄신’의 방향을 정했다.
분과위 자문위원인 권영진 의원은 국회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통일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유연한 대북정책 기조를 갖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엄격한 상호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김정은 북한 체제 이후 예측불허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정세와 대북정책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현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선을 긋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는 또 “신(新)자유주의 질서가 낳고 있는 양극화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공정경쟁·경제정의 등의 가치를 강조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성장주의, 대기업 친화적인 이명박 정부와 이념 및 정책에서 상당히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당장 현 정부의 대표공약인 ‘747 공약’(연평균 7% 성장, 소득 4만 달러 달성, 선진 7개국 진입)은 공식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출자총액제한제의 부활, 금융·산업분리 강화, 법인세 최고구간 신설 등 재벌 규제에 나설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747 공약은 허구”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김 위원이 4일 공론화한 ‘보수’ 용어 삭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논의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권 의원은 “‘보수’ 용어에 집착하지 말자는 의견이 7대 3으로 다수였다”며 “다만 논쟁의 여지가 있어 좀 더 논의키로 했으나 담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당내 논란은 분과위의 엇갈린 의견보다 더 뜨겁다. 쇄신파인 원희룡 의원은 MBC와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보수’ 용어 삭제는) 굉장히 과감한 문제제기”라며 “시대가 바뀌면 보수의 내용도 바뀌는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라면 수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홍준표 전 대표는 “부패한 보수·탐욕적 보수가 문제지, 참보수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이냐”면서 “이러면 당 정체성이 사라져 보수도, 진보도 아닌 게 된다”고 비판했다. 정몽준 전 대표는 “보수 삭제가 말이 되냐. 그럼 민주통합당인데…”라고 말했고, 김문수 경기지사도 “비대위 구성이 결격이다. (비대위원들에게) 당 정체성과 정당성이 없다”고 했다. 친이재오계로 분류되는 장제원 의원은 트위터에 “급기야 중도보수 가치마저 표에 판다니 제가 마음을 접어야겠군요. 이제 정말 떠나야겠네요”라고 올렸고, 친박 성향인 김용갑 상임고문은 “한나라당을 파괴하고 민주통합당에 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극단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참석한 ‘대구·경북인 신년 교례회’에서는 미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박 위원장은 “대구·경북이 이제 새로운 변화의 길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했지만 이어 등단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앞으로 TK 다 빼고, 보수 다 빼고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라고 일갈했다. 정치인 중에는 이상득 박종근 이한구 김성조 주성영 배영식 김옥이 의원과 김문수 경기지사가 참석했다.
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