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 불구속 기소…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구속 기소

입력 2012-01-05 18:53

재계 서열 3위 SK그룹 최태원(52) 회장이 8년여 만에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SK그룹 총수 형제의 횡령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중희)는 5일 최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것은 2003년 2월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지 8년11개월 만이다.

검찰은 최재원(49) SK그룹 수석부회장을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SK홀딩스 장모 전무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투기적 옵션투자를 위해 계열사 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대기업 회장 일가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회장은 2008년 10월 말 SK텔레콤 등 2개 계열사가 선출자금 명목으로 497억원을 베넥스인베스트먼트(베넥스)로 송금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김준홍(47·구속기소) 베넥스 대표는 최 부회장 지시에 따라 이 자금을 최 회장 형제의 선물투자를 맡은 김원홍(51·해외체류)씨에게 선물옵션 투자금으로 송금했다.

최 회장과 장 전무는 2005∼2010년 계열사 임원들에게 매년 성과급을 과다지급한 뒤 이를 SK홀딩스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139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 개인경비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최 회장에게 적용된 횡령 액수는 636억5000만원이다.

최 부회장과 김씨는 2008년 11월 SK가스 등 3개 계열사에서 창업투자조합 선출자금 명목으로 베넥스에 495억원을 송금해 1차 출자금 497억원을 충당하는 등 돌려막기식으로 횡령한 혐의다. 이들은 2008년 12월 하순 선물옵션 투자 손실로 2차 출자금을 충당할 수 없게 되자 이미 조성된 투자조합 출자금 750억원을 3개 저축은행에 예금한 뒤 이를 담보로 대출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8일 SK 계열사 압수수색 과정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삭제·은닉하고, 증거 은닉 장면이 촬영된 CCTV 화면을 지우는 등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SK그룹 법무팀 이모 상무 등 4명을 약식기소했다. 윤갑근 3차장검사는 최 회장 불구속 기소에 대해 “형제가 공범이지만 범죄행위 분담내용과 SK그룹 경영 활동에 대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불기소 또는 기소유예를 기대했던 SK그룹은 안타깝다며 재판 과정에서 적극 해명하겠다고 밝혔다. SK 관계자는 “지금까지 횡령 과정 등에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사법처리돼 안타깝다”며 “법정에서 적극 해명하고 오해나 의혹이 풀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자산 규모가 3조원에 달하는 최 회장이 수백억원의 회사 자금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할 이유가 없다”면서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오해가 증폭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SK 측은 최 회장의 재판 출석으로 올해 그룹의 글로벌 경영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은 중국, 중동, 남미 등에서 계열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패키지형 사업 개발을 추진 중”이라며 “이들 사업의 경우에는 각국 정부의 최고위층을 상대로 하다 보니 최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인데 불구속 기소로 이들 사업은 물 건너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중 이명희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