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아버지 없는 사회
입력 2012-01-05 18:03
아버지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 모계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어머니의 위치가 아버지의 자리보다 높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혈족인 고모나 삼촌보다 어머니 형제들인 이모나 외삼촌이 자녀들과 더 가깝다.
무엇보다 맞벌이가 증가하면서 육아 등의 이유로 처가에 의존하는 남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원인의 하나인 듯하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서도 처가살이를 하는 남성은 20년 만에 3배(1990년 1만8088명→2010년 5만3675명)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시집살이를 하는 여성이 절반 정도 감소한 것과 대조를 보인다.
돈을 벌어오는 부인과 도움을 주는 장인 장모의 발언권이 자연스럽게 세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같은 현상은 가부장제 문화가 강한 일본이나 대만도 마찬가지며 세계적인 추세라고 한다. 아버지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떨어진다고 하니 우리나라 가장들만 슬퍼할 것은 아니란 데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문제는 아버지 없는 사회는 곧 바로 ‘갓리스 소사이어티(Godless society)’, 즉 신(神)없는 사회로 변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오늘날의 무종교성, 하나님의 권위나 종교적인 것이 타락하고 무신론이 득세하는 것도 일정 부분 그런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근작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에 나오는 얘기다.
이 교수의 주장은 하나님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니 지상의 아버지의 지위가 이상해지면 하나님 아버지의 지위에도 손상이 간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에서조차 지역에 따라 동성 간 혼인이 합법화되고 무신론이 거세게 번지는 세기말적 현상이 지구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나타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의 큰 문제로 등장한 학교폭력 문제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아버지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그 중 한가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이 아니라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풍토가 근본 원인이라는 등 백가쟁명식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가정교육의 부재도 빼놓을 수 없다.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아이들이 밖에 나가 남을 괴롭히는 일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행청소년 가운데 상당수가 결손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 단적으로 이를 증명한다. 우리 사회도 이제 아버지의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