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태일 (5) 부대원들의 영혼 구원한 대대장의 예배 인도

입력 2012-01-05 17:41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천주교인이었다.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에다 견진성사까지 받았다. 그런데 군에 입대한 뒤 천주교회를 찾았지만 개신교회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강원도 철원 관인지역의 638포병대대에 배치되었다. 흔히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고 하는데, 나야말로 군대 가서 소위 팔자를 고친 사람이다.

군에서 세 가지를 얻었다. 먼저 소위 ‘포다리’라고 해 포병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면서 사회에 나와서 극심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을 얻었다. 둘째는 상급자들로부터 수없이 맞아가며 일을 신속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을 배웠다. 셋째는 천만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성령체험을 하게 됐다.

이등병에서 일등병으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돼 우리 부대에 강모균 대대장이 부임했다. 군대의 엄한 규율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대대장은 그야말로 하늘같은 존재였다. 한데 그는 전직 대대장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일단 그는 교회 집사로 철저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소령 때 간암에 걸렸던 그는 엄청난 고통 중에 있다가 어느 날 부흥회에 참석해 씻은 듯이 치유 받았다. 이후 그는 소위 교회에 미친 사람이 돼 있었다.

그는 대대장 부임 후 전 부대원들의 식사를 자유배식으로 바꾸었다. 중간에서 고참들이 맛있는 것을 빼가는 것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그리고 저녁 9시만 되면 취침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그러자 일석점호를 하기 전 한 시간 동안 매 맞고 기합 받고 극심한 욕설에 시달려야 했던 고통이 없어졌다.

그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직접 예배를 인도했고, 수요일에는 외부 목사님을 모셔와 예배를 드렸다. 금요일에는 철원에 있는 대한수도원에 가서 철야를 하고 토요일에 내려와 주일예배 준비를 하셨다. 대대장이 부대 안을 예배 드리고 찬송하는 분위기로 바꾸어 버렸다. 특히 정초 연휴에는 유명한 부흥강사를 모셔와 사흘간 부흥회를 열기도 하셨다.

어느 날 천국을 다녀온 성결교단의 이경순 목사님을 모셔 부흥회를 했다. 이 일로 부대원들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전에는 담배가 없어 쓰레기장에서 담배꽁초를 모아서 종이에 말아 피우고, PX에서 술을 사다가 밤만 되면 술파티를 열기 일쑤였다. 그리고 고참들은 술에 취하면 부하들을 화장실 뒤로 끌고 가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것이 일과였다. 하지만 부흥회 후에는 그렇게 모자라던 화랑 담배가 관물대에 서너 갑씩 남아돌았으며, 저녁이 되면 찬송과 기도 소리가 내무반에 울려퍼졌다. 너도나도 하나같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슴 가득 채웠다. 기합과 구타가 난무하던 부대 안 전통은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가 됐다.

바로 그때 나는 성령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믿음생활을 하며 군 생활이 그렇게 신바람 날 수가 없었다.

이후에 나는 중대 교육계와 군종병 역할을 맡게 됐다. 아무리 힘든 교육을 받아도 성령 받은 이후에는 언제나 기쁨이었고 신바람이었다. 무엇보다도 큰 소득은 당시의 그 대대장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분은 2001년에 설립한 사단법인 ‘중보기도단 7000클럽’을 만들어 실무회장을 맡고 계신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의 만남이 30년 넘게 이어진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인가. 더구나 그 만남으로 힘을 얻고, 도움을 받고, 천국을 바라보며 손잡고 갈 수 있는 믿음의 동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든든하지 않은가.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