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태양빛, 밤엔 전깃불 아까워 붓 놓을 수 없었다… 김환기 회고전 1월 6일부터
입력 2012-01-05 18:38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 현대회화의 독창성을 구축한 김환기(1913∼1974)는 작품성 면이나 상업성 면에서 가장 인정받는 작가라는 평가다. 생전 3000점에 이르는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의 피카소’라는 별명이 붙었고, 사후에는 국내외 각종 경매에 출품된 그의 작품들이 억대에 낙찰돼 ‘블루칩 작가’로 떠올랐다.
명실공히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 6일부터 2월 26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신관에서 열린다. 갤러리현대가 2010년 박수근, 지난해 장욱진에 이어 기획한 ‘한국 현대미술 거장’ 전의 일환으로 내년에 탄생 100주년을 앞둔 김환기의 1930년대 작품부터 작고 직전까지 시대별 대표작 60여점을 소개한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일본대학 미술부를 나온 김환기는 30년대 추상화를 거쳐 50년대 우리 것을 그려야겠다는 의식으로 달 매화 학 항아리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1부 ‘서울시대Ⅰ’(1937∼56)에서는 ‘피난열차’ ‘항아리와 여인들’ ‘답교’가, 2부 ‘파리시대’(56∼59)에는 ‘항아리와 꽃가지’ ‘산’이, 3부 ‘서울시대Ⅱ’(59∼63)에는 ‘달과 매화와 새’가 각각 전시된다.
4부 ‘뉴욕시대’(63∼74)에는 동양적 정체성을 점으로 표현한 추상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0만개의 점’ 등을 선보인다. 이 시기 작품들은 기존의 푸른색에서 회청색으로 변했고 특히 74년 작 ‘무제’는 가장 우울한 느낌을 준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그해 7월 25일 뉴욕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서울 창신동에서 살던 어린 시절, 여름이면 부채질을 하는 등 조수 노릇을 했다는 김 화백의 둘째딸 금자씨는 “아버지는 유머감각이 있었고 늘 웃으며 다정다감했다”며 “뉴욕에서 작업할 때 편지를 보내셨는데 ‘낮에는 태양빛이 아깝고 밤에는 전깃불이 아까워 잠시라도 붓을 놓을 수가 없다’고 적었다. 그래서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회상했다.
이번 전시 작품 가운데 50년대 작 ‘귀로’와 64년 작 ‘메아리’, 64∼65년 사이에 제작된 ‘무제’는 처음 공개된다. 출품작 전부 개인 소장자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 소장자와 평소 쌓은 친분 덕분에 가능했다. 박 회장은 “미술 애호가인 소장자 대부분이 회장들이라 연락도 잘 안돼 작품을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평론가, 작가, 화랑, 언론 등 미술계 전문가 100명과 일반 관람객 1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김환기의 대표작’을 조사한다.
또 10일 오후 2시 전시장에서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특강이 열리고 2월 20일에는 김 화백의 흔적을 찾아가는 ‘신안 김환기 생가 투어’가 진행된다(02-2287-35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