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으로 떠나는 맛 여행] 겨울 별미 ‘매생이’ 속풀이 음식에 최고
입력 2012-01-04 22:13
김도 아니고 파래도 아닌 것이 혀처럼 부드럽고 여인의 머릿결처럼 고운 매생이는 한때 어민들에게 골칫거리였다. 지금은 겨울철 남도 최고의 별미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예전엔 김을 양식하는 대나무발에 매생이가 붙으면 김값이 폭락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바다의 잡초’에서 ‘바다의 귀족’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매생이가 드디어 제철을 맞았다.
매생이의 고향은 십수 년 전 처음으로 양식에 성공한 전남 장흥군 대덕읍 내저리의 갬바우벌 안바다. 고금도 등 크고 작은 섬들에 둘러싸여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는 매생이발을 묶어놓은 대나무 말뚝(말장)이 촘촘하게 박혀 기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어민들은 작은 어선에 납작 엎드린 채 얼음처럼 차가운 바다에서 발을 끌어올린 다음 손으로 일일이 훑어 매생이를 채취한다. 물이 빠져 초록색 융단으로 바뀐 매생이 양식장은 한 폭의 그림.
매생이 채취 시기는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채취한 매생이는 갯물에 헹궈 김과 파래를 골라내고 물기를 짜 주먹 크기의 덩어리로 만들어 출하한다. 매생이 한 덩어리는 약 400g으로 장흥읍내의 정남진토요시장에서 4000∼5000원에 팔린다. 국으로 끓이면 4∼5인분 되는 양.
청정해역에서 자라는 매생이는 철분과 칼륨 등 무기염류와 비타민이 풍부한 건강식품.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매생이는 가늘기가 누에실과 같고 소털처럼 촘촘하며 맛은 향긋하고 달콤하다”고 적고 있다. 부드러운 맛과 바다 향기 그윽한 매생이국이 속풀이 해장국으로 인기가 높은 이유다.
장흥에서는 국물이 안보일 정도로 되직하게 끓여야 제대로 된 매생이국으로 대접받는다. 이때 주의할 점은 오래 끓이거나 불이 세면 매생이가 녹아 흐물흐물해지므로 살짝 끓여야 한다. 여기에 굴이나 전복을 넣어 함께 끓이면 씹히는 맛이 일품으로 매생이 칼국수와 매생이 부침개는 남도에서나 맛보는 별미 중 별미.
재미있는 사실은 매생이국은 아무리 뜨거워도 김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멋모르고 마셨다가는 입천장을 데기 십상이다. 매생이국 첫술을 미운 사람에게 양보한다거나 남도의 장모들이 미운 사위에게 뜨거운 매생이국을 대접한다는 우스개는 이래서 나왔다. 하지만 매생이국의 참맛을 알고 나면 입천장이 열 번 백 번 데이더라도 허겁지겁 마시지 않을 수 없다.
장흥 출신 시인 이대흠은 매생이국의 부드러운 맛을 “이 세상의 모든 음식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어머니의 맛”이라고 했다. ‘혀에 혀가 닿은 느낌’을 두고 시인 안도현은 “입속에서 오장육부까지 이어지는 푸르름의 폭포여”라고 노래했다. 부드러운 데다 너무 맛있어 혀를 잘 붙들지 않으면 혀까지 넘어가 버린다는 맛. 한겨울 장흥에서나 맛볼 수 있는 부드러움의 극치라고 하겠다.
장흥=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