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대륙을 가다] 해빙 난관 뚫고 ‘남극 최고의 기지’ 짓는다

입력 2012-01-04 22:21


‘장보고 기지 건설’ 극한환경 극복 현장

문제는 바다의 얼음이다. 장보고 기지를 시공할 현대건설 관계자들이 이번 조사에서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해빙(海氷·바다 얼음)의 두께와 온도, 습도 등이다. 장보고 기지 예정지는 남극에 단 2%만 존재하는 육지. 그런데 바다 얼음의 상태가 왜 중요할까? 이유는 이렇다.

#바다의 얼음을 살펴라

현대건설 관계자들은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테라노바 만 인근 드라이갈스키 빙하지대의 해빙 위에 내려 아이스드릴로 얼음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얼음 두께와 온도를 재고 빙질을 조사했다. 2일에는 기지 예정지인 테라노바 만에서 7㎞ 떨어진 지점에서 또다시 얼음 상태를 측정했다. 얼음 두께는 1.6m에서 20㎝가량 가감되는 정도, 얼음은 축축하고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었다.

3일엔 예정지 해안선 20m 지점으로 옮겨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2m까지 뚫었는데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작업 도중 아이스드릴 2개가 모두 부서진 탓에 정확한 수치를 측정하는 데 실패했다. 이날 밤 긴급히 드릴 하나를 수리했다. 4일 같은 장소에서 재도전에 나섰다.

아라온호에 타고 있는 현대건설 임직원은 7명. 이 중 임원인 박재수 전무, 전체 상황을 총괄하는 곽임구 소장을 제외하면 실제 작업에 투입될 수 있는 인력은 5명이다. 이 중 매일 서너 명이 얼음 상태 측정에 매달린다. 이들은 아라온호가 남극을 떠나는 순간까지 장소를 바꿔가며 얼음을 뚫고 상태를 측정할 예정이다.

3일 밤에는 김예동 남극대륙기지건설단 단장과 현대건설 관계자들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논의 주제는 당연히 ‘얼음의 상태’였다.

#기지 건설의 1차 관문

과거 세종기지를 지을 때는 해빙은 논의거리조차 못됐다. 23년 전 세종기지 건설 당시 공사과장으로 참여했었던 박 전무는 “세종기지 주변은 12월 중순만 돼도 해안가의 얼음이 다 녹았기 때문에 걱정도 안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남위 62도와 74도의 바다는 완전히 다르다.

장보고 기지 예정지인 테라노바 만에는 남극의 여름인 12월부터 2월까지만 접근할 수 있다. 다른 기간엔 남극해의 해빙대가 너무 넓어 쇄빙선으로도 접근하기 어렵다. 여러 조건을 감안하면 약 12월 25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 65일 정도가 최적의 상황에서 공사가 가능한 기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기간 중에도 최대풍속이 16.5m/s 이상인 날, 일평균 기온이 영하 5도 이하인 날 등은 작업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공사할 수 있는 날은 41일 정도. 공사기간이 너무 짧다.

때문에 현대건설은 기지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올 연말에는 남극 도착을 12월 10일쯤으로 앞당기고, 철수는 내년 3월 11일쯤으로 최대한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2월과 3월 두 달은 더 혹독한 악조건이 예상되지만 공기를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실제 공사는 1차로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2차로 내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2개년에 걸쳐 진행될 계획인데 1차에 본관동의 주요 공사를 끝내야 제때 완공이 가능하다.

문제는 도착 예정 시점인 12월 초엔 해안가에 해빙이 가득하다는 것. 남극은 1월에도 해안선부터 6∼7㎞까지 얼음이 차 있다. 쇄빙선을 이용해 얼음을 깨서 다 걷어내고 기지까지 접근하는 방법도 있지만 10일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일찍 온 효과가 사라지고 만다.

남은 방법은 얼음 위에 짐을 내린 뒤 현장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싣고 오게 될 장비 중 불도저, 크레인 등은 무게가 30∼40t이나 된다. 자칫 얼음이 깨져 장비를 잃었다간 공사가 불가능해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안전한 공사를 위해선 얼음이 이들 중장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여부를 세밀하게 측정할 수밖에 없다. 곽 소장은 “얼음 상황은 매년 다르다. 어느 시기에 얼음이 어떻다고 확정할 수 없지만 현재 자료를 축적하고 위성사진을 참고하면 공사가 시작되는 올해 12월 얼음 상태가 어느 정도일지 유추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인근 이탈리아 마리오 주켈리 기지의 알베르토 델라 로베레 대장을 데려와 자문을 구했고, 이 기지에서 측정한 12월 얼음자료도 확보했다. 지난해 답사를 왔을 때 함께 남극으로 철수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졌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단다. 얼음 자료를 최대한 축적하고 현지에서 세밀하게 측정하는 것이 기지 건설의 성패를 가늠할 1차 관건이다.

#첨단 기지를 짓겠다

해빙 외에도 난관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어려운 줄 알고 시작한 일이다. 난관을 이겨내고 최고의 기지를 짓겠다는 것이 모든 관계자들의 각오다.

그래서 짧은 조사 기간 동안 얼음 상태 측정 외에도 할 일이 많다. 기지 예정지에선 측량이 진행됐고 4.7m 크기의 위성통신안테나가 설치됐을 때 전파를 막는 장애물이 없는지도 재차 확인했다.

모든 작업은 최첨단 기지를 짓는 데 맞춰져 있다. 장보고 기지가 완공되면 기지의 신재생 에너지 사용비율은 30%에 달한다. 풍력, 태양광 발전 장치가 들어서고 유리창에는 태양광 발전장치를 필름형태로 만든 시트가 설치된다. 작은 전기라도 친환경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난방은 발전기의 폐열을 100% 이용하게 된다.

또 기지는 최악의 바람, 눈 환경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어진다. 설계단계에서 바람, 눈의 영향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마쳤다. 특히 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실험은 국내에서 하는 곳이 없어 캐나다의 연구시설에서 시행됐다. 수천만원이 들어간 비싼 실험이었지만 혹시라도 쌓인 눈에 출입구가 봉쇄되고 동선이 막히는 상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선 결코 생략할 수 없었다. 국내 건설사가 만드는 건물 중 적설 하중을 감안한 구조 설계와 적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공이 이뤄지기는 장보고 기지가 처음이다.

또한 바닷물과 눈 녹인 물을 생활용수로 쓸 수 있도록 전환해주는 담수화 장비와 융설장비가 들어선다. 단열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유리창도 5중 유리가 사용된다. 2중 유리창과 3중 유리창 사이에 공간을 둬 보온효과를 극대화했다. 영양분이 녹아든 물과 조명을 조절해 식물의 생장 환경을 인위적으로 구현한 식물공장 설치도 예정돼 있다. 연구원들에게 신선한 야채를 공급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1년의 절반은 해가 뜨지 않는 곳에서 생활할 대원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효과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무는 “23년 전 경험을 토대로 모든 난관을 뚫고 최고의 기지를 제때 완공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남극=글 김도훈 기자, 사진 이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