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태정] ‘양치기 어른’
입력 2012-01-03 19:04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늘 하는 생각과 행동이 있다. 지나간 날을 돌아보고는 ‘그래! 올해는 새로운 내가 되어야지’ ‘올해는 반드시 이것을 실천해야지’라며 계획하고 정리하는 시기로 정한다. 60년 만에 한 번 온다는 임진년 흑룡의 해가 대수인가. 그보다는 내가 보내게 될 한 해가 중요하다.
지난해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된 일들이 여러 칸 자리 잡고 있었다. 설렘과 각오로 맞이한 2011년이었지만, 새로운 변화들이 생기면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틀어진 것이리라. 결국 계획한 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는 이번에도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 아니 양치기 어른이 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굳건히 다졌던 결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디어졌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와 핑계들이 생기면서 반들반들했던 칼날은 조금씩 마모되어 갔다. 한두 번 미루다보니 계획한 것을 놓치고 급한 일에 치중하며 열심히 살기만 했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해 있을 필요는 없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뭉툭해진 칼날을 갈아야 하는 시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입은 적게 움직이고 머리는 많이 움직이기 위해 펜과 새로운 다이어리를 꺼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올해에도 적자생존을 실천해야지.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닌, 적어야 산다는 ‘적자! 생존!’의 원리. 나의 적는 습관은 7년 전부터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은 나머지 새로운 나를 설계하기 위해 무조건 적기로 한 것이다. 고민이 있을 때나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 상황의 강점과 약점 등을 적으며 SWOT 분석 하듯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실패도 많고, 이루지 못한 일도 많다. 꿈은 단기·중기·장기로 적어 가장 단기의 목표에 충실하고자 애써보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이것을 잃으면 망망대해에서 떠있기만 하는 배가 된다. 배를 원하는 부두에 정박시키기 위해 목표지점에 집중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부두를 코앞에 두고도 제대로 접안시키지 못하면 항해사로서 낙제점이다. 아니, 배에서 내려야 한다.
지난해는 실천하지 못한 일이 적지 않아 안타까운 한 해였지만, 그래도 내일이 있기에 웃을 수 있다. 긍정의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계단을 오른다. 복이 와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을 절감한다.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함께 나누고 싶은 것들도 쌓여있다. 목록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니 마음이 급해진다. 머리와 가슴이 널뛰고 있다. 꿈을 꾸되 차근히 새해를 맞아야겠다. 약속의 목록 위에 선이 하나하나 그어지며 열매를 맺는 2012년, 더 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한 해를 그려본다.
안태정(문화역서울284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