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문화재 ‘이승만 별장’ 어쩌나… 다 쓰러져 가는데, 제주도의회 보수 예산 싹둑
입력 2012-01-02 19:08
폐가가 된 이승만 별장에 대한 제주시의 정비사업 예산이 제주도의회에서 삭감돼 사업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족회 등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도 엇갈리는 상황에서 보수공사는 불투명해졌다.
시는 붕괴위기에 처한 이승만 별장에 대한 원형유지 차원에서 2억4600만원을 들여 보수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예산이 삭감돼 사업추진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2일 밝혔다. 하지만 시는 우선 추경예산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목장에 있는 별장 건물은 대지 660㎡에 건물면적 234㎡ 규모의 1층 단독주택 규모다. 한국군 공병대가 1957년 미군 지원으로 지었고, ‘귀빈사(貴賓舍)’로 불리면서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별장내부에는 16㎡가량의 전용 침실을 포함한 4개의 방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화장대·응접실·주방·벽난로·욕실·수세식 화장실·원형식탁 등이 있었다. 국가원수가 머물렀던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유로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시는 별장부지에 기념관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4·3유족회 등 일부의 반발에 따라 원형보수로 사업규모를 축소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도의회가 제동을 걸어 올해 보수공사가 이뤄질지 확신할 수 없게 됐다. 도의회는 지난해 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4·3사건으로 도민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을 보수하기 위해 지방비를 투입하는 것을 4·3사건 유족들이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별장이 마룻바닥이 꺼지고 기둥이 썩는 등 폐가처럼 변했다고 설명했다. 구조 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은 만큼 보수·보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시 문화재 담당자는 “이승만 별장은 등록문화재 113호로 지정됐기 때문에 보수비용은 국비와 지방비 50대 50 비율로 책정된다”고 밝혔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공동대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분명히 4·3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이승만 별장 자체도 역사”라면서 “이승만의 책임과 4·3사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부담되지 않는 범위에서 보수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 등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며 역사적 의미 등 교훈을 되새기는 여행을 말한다.
이에 시 관계자는 “4·3사건 희생자 유족들은 물론 관련 단체 등을 직접 만나 귀빈사의 독특한 건축양식 등을 잘 설명한 뒤 사업 추진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