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소원을 말해봐
입력 2012-01-02 18:22
무인도 시리즈에 나오는 이야기. 옛날 어느 무인도에 3명의 중년 남자들이 표류해 왔단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가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어느 날, 뜻밖에도 아라비안나이트에나 나오는 지니가 나타나서 “너희들의 소원 한 가지씩을 말해봐!” 했단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해하며 첫째 남자가 말하길 “나는 이 무인도에서 빠져나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유명한 스타 배우로서 살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남자는 소원대로 유명한 ‘스타’가 되었단다. 두 번째 남자는 소원을 말하길, “나는 이 섬을 빠져나가 큰 권력을 가진 실력자가 되고 싶습니다. 짧은 인생 권력과 함께 영화를 누려보고 싶습니다.” 그 남자 역시 소원대로 권력을 지닌 ‘킹(왕)’이 되었단다. 이 엄청난 기적을 목격한 세 번째 남자는 욕심이 생겨 슬그머니 소원 두 가지를 말하게 되었단다. “나는 이 섬을 빠져나가 유명한 스타 연예인도 되고 싶고 권력을 마음껏 누려보는 킹(왕)도 되고 싶습니다.” 세 번째 남자는 그 소원대로 ‘스타킹’이 되고 말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임진년 새해를 맞으며 누구나 한 가지씩 소원을 품고 새로 오는 시간을 맞았으리라. 그 소망들이 너무 욕심 많은 소원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임진년, 올해의 내 소원은 소박하다. 스타킹이 되고 싶지 않아서이다. 올해는 늘 품었던 소망과 사뭇 다른 꿈을 가지고 기도원에서 새해를 맞았다. 한 겨울 뼛속 깊이 스며드는 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기도원 뒷산을 홀로 올라 올해는 ‘따스한 햇살처럼’ 살게 해 달라고 빌어 보았다. 차가운 겨울 창틈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겨울햇살처럼 사람들 추운 몸과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햇살, 그리고 자신의 임무가 끝나면 말없이 조용히 물러가는 겨울햇살처럼 꼭 필요한 구석에 조건 없이 스며들어 사람들의 삶을 덥힐 수 있는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어 보았다.
셀 수도 없는 새해를 맞으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소원을 빌어오던 나는 문득 구약성서의 야곱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동안 모든 새해의 소원들이 내 중심, 소유지향, 경쟁지향의 소원들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악착같이 살았고 경쟁력 있게 살아왔지만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이웃을 잃어버린 삶이 되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서는 형의 축복까지도 너무도 당당하게 훔치며 살아오던 이기적 삶의 방식 때문에 형 에서의 질투를 받고 그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쫓겨 가는 신세가 된 야곱.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쫓기는 삶의 길목, 루스라는 이름의 황무지에서 돌베개를 베고 피곤하게 잠을 자고 있는 창세기 28장 속의 야곱! 그 모습이 지금의 나와 그리고 지금의 한국 교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기독교인인 우리가 지금 사회에서 받고 있는 불신과 냉대와 손가락질은 아마도 야곱의 황무지에서의 상황과 흡사하다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임진년, 은총처럼 우리에게 찾아온 새해는 나 중심, 내 이익 중심, 내 축복 중심, 내 교회 중심에서 한 발짝씩 나와 이웃과 함께 세상과 더불어 새 꿈을 꾸어야 할 시간이다. 야곱이 황무지에서 하늘 꿈을 꾸고 말했던 것처럼 이 땅을 두려운 곳으로 하나님의 성지로 만들며 조심스럽게 겸손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배우며 살아야 할 새해라 믿는다. 새해 아침, 흐릿한 구름사이로 떠오르는 햇살을 보며 나는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읽었다.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 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 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 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연세대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