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일류 복지국가로 가는 길
입력 2012-01-02 18:37
한국 정치에서 한때 대통령으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돼온 서울시장을 바꿔놓은 무상급식 논쟁은 야권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올해부터는 우리 아이들이 한 푼도 내지 않고 너나 구별 없이 좋은 식단에 좋은 음식을 먹게 된다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가슴 아픈 것은 구청에서 실시하는 노인들을 위한 각종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축소된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구청에서는 글자를 모르는 어르신을 위해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각 분야의 유명인사를 초청해 강연회도 연다. 모 구청에서 운영하는 지식비타민강좌는 한국인재개발원에 강사를 의뢰해 엄선된 사람만 초청한다는 입소문 때문에 청중이 넘쳐난다고 한다. 그렇지만 무상급식이 올해부터 확대될 경우 영향을 받지 않을까 담당자들은 걱정이 많다.
공동체 합의로 정책 만들고
이처럼 복지는 좋은 것이지만 한정된 재원을 쪼개 사용해야 하는 만큼 정책 결정까지의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당연히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모아져야 한다. 단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공약을 남발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포퓰리즘을 넘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두 번의 큰 선거가 예정된 올해도 예상대로 이 당 저 당 기웃대는 정치 철새들이 어김없이 등장하고 여권의 유력 대권후보는 맞춤형이라는 변형된 복지개념을 내놓았다. 그저 있는 사람한테서 돈 더 걷어 없는 사람에게 밥 한 숟가락 퍼주는 것이 복지라고 생각한다면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복지 정책이 문제인 것은 무엇보다도 복지에 투자된 재원이 다시 밀알이 돼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승수효과가 미미하다는 데 있다. 일회성, 소모성 복지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최하층에 돌아가는 부조(扶助)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차상위층부터는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일을 안 해도 생활이 보장돼 근로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청부(淸富)의 문화가 없어 가진 사람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수혜 계층이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공동체 구성원의 희생으로 재기의 기회를 주는데도 이를 당연시 한다면 화합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언젠가는 나도 재기해 공동체를 위해 많은 세금을 내고 거액을 기부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닐까.
사실 우리나라처럼 부자들이 할 말 못하고 사는 사회도 드물다. 대기업과 재벌이 압축성장 과정에서 정부의 과도한 특혜와 노동자의 저임금을 발판삼아 성장했다는 원죄 의식이 너무나 오래간다.
수혜층도 고마운 마음 가져야
직선제로 민주정부가 수립돼 노동운동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된 지가 이미 4반세기를 넘어 섰다. 그동안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부를 자처한 정권도 두 번 10년간 집권했다. 이제는 저임금 받는 노동자 보호가 문제가 아니라 노동단체의 이기심, 배타성, 지나친 정치 편향성이 도마에 오른 시대가 왔다. 양보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은 정부와 네 탓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데 따른 것이다.
일류 복지국가가 되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자들은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도록 존경받고 소외된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몫을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고 리더십 아니겠는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