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이 한 마리 매달아 놓고 窓間一蝨懸
응시하면 바퀴처럼 크게 보인다 目定車輪大
내가 이 괴석을 구한 뒤로는 自我得此石
굳이 화산을 쳐다보지 않는다 不向花山坐
최립(1539~1612)
괴석(怪石) ‘간이집(簡易集)’
간이(簡易) 최립은 선조 때의 문인이다.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 외에 최립의 문장과 오산 차천로의 시, 석봉 한호의 글씨를 또 하나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소개하고 있다. 이 시는 최립이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20대 중반 옹진 수령으로 있을 때 지은 것이다. 화산은 옹진현의 동쪽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앞의 두 구에는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나오는 기창관슬(紀昌貫?)이라는 고사를 인용하였다. 기창이 비위(飛衛)에게 활쏘기를 배웠는데 창문에 이를 매달아 놓고 수련한 결과 3년이 지나자 이가 수레바퀴만큼 크게 보여 마침내 이의 심장을 쏘아 맞추었다는 이야기다. 작은 괴석에 정신을 집중하니 산처럼 크게 보여 굳이 가까이 있는 명산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말인데, ‘한서(漢書)’ 등을 읽으며 문장 공부에 몰두하던 젊은 날의 무서운 결기를 읽을 수 있다.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보면 어떤 앉은뱅이가 바늘 던지기를 오래 하여 신묘한 경지에 오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유재란 때 충청도 소사에서 왜군과 명군이 대진하였다. 싸움을 돋우러 나온 왜병에게 명나라 병사가 장창을 들고 대적하지만 그는 물론 자신의 네 아들마저 적수가 되지 않는다. 아군의 진영이 술렁대고 공포에 휩싸인다. 이때 자원한 베옷차림의 조선 병사, 빈손으로 춤추며 걸어 나오고 그를 비웃던 왜병은 순간 고꾸라진다. 눈동자에 바늘이 정통으로 박힌 것이다.
수험생들에게 친숙한 ‘주자어류’에 나오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말이나 추사 김정희가 흥선 대원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음을 집중하여 공력을 들여야(專心下功) 가슴 속에 풍부한 학식을 담고 손목에 굳센 필력을 갖출 수 있다’라고 한 말도 같은 메시지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이때 음미해 볼 만한 시이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고전의 샘] 專一한 마음의 힘
입력 2012-01-02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