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 “한국과 유럽의 클래식 음악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입력 2012-01-01 18:34


세계적인 음악축제 ‘체스키크룸로프 인터내셔널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 지난해 7월 14일, 체코 보헤미아주 남쪽의 소도시 체스키크룸로프. ‘작은 프라하’로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유서 깊은 이곳에 마련된 음악회 무대에는 라트비아 출신의 거장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63)가 올라 1000여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청중의 시선은 금세 바이올리니스트 정상희(23)에게로 쏠렸다.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 무대였다. 특히 브람스 협주곡은 고도의 기교가 요구되는 곡으로 호흡이 잘 맞는 두 명의 독주자가 함께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1악장 알레그로에서 마이스키가 첼로로 카덴차를 강렬하게 던지자 정상희는 바이올린 카덴차로 재빨리 뒤따랐다. 기교 넘치는 선율에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더해지자 청중은 숨을 멈췄다. 3악장 마지막을 연주하던 중 마이스키의 첼로 줄이 끊어졌으나 정상희는 차분하게 현을 끝까지 그었다. 두 사람은 일곱 번의 커튼콜과 전원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공연으로 유럽 음악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정상희가 한국에 왔다. 오는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위해서다. 최근 만난 그는 6개월 전 연주의 감동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듯 보였다. 그는 “저에게는 꿈 같은 도전이었는데, 연주를 잘 마쳐 너무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섯 살 때부터 동네 음악학원을 다니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정상희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다닐 때 국민일보·한세대, 음연, 음악춘추 등 각종 음악콩쿠르에서 1등 및 입상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 예고 2학년 재학 중이던 2007년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음대에 수석 입학했다. 유럽으로 건너간 지 5년째, 유럽 유명 오케스트라의 협연에 마이스키가 적극 추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거듭났다.

시종 입가에 미소를 띠며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그는 “이번 서울 공연은 개인적으로 한국에서의 첫 무대여서 무척 설레고 긴장된다”며 “독일 음악가 브루흐의 열정적이고 환상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계획인데 많은 사람들이 듣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곡을 택한 이유는 자신의 연주 캐릭터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2009년 마이스키와 협연했을 때도 그렇고 지난해 두 번째 협연에서도 그렇지만 활기차고 아름답게 곡을 소화한다는 평을 많이 들었어요. 바이올린 소리가 아름답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지만, 오케스트라나 협연자들과 화음을 잘 이룬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장점을 살려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음악을 선사하려고 합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립교향악단, 북체코 필하모니오케스트라, 이집트 카이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이탈리아 바리시립교향악단, 독일 뉘른베르크 심포니오케스트 등 유수의 교향악단과 협연해 호평 받았다. 동양인 연주자로서 세계 무대에 서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남다른 노력과 열정 덕분에 비교적 빨리 인정받을 수 있었다.

“유럽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땐 악단 전체가 저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압박감을 견뎌내는 게 가장 힘들지만 그럴수록 어금니 콱 물고 음악에 빠져들려고 노력합니다.”

이번 서울 공연에 이어 올해 그의 연주 일정은 줄줄이 짜여져 있다. 3월에는 이탈리아 로마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잇따라 연주를 하고 6월에는 인천 공연을 거쳐 루마니아 무대에 선다.

또 9월에는 크로아티아, 10월에는 독일 뮌헨에서, 12월에는 경기도 성남에서 연주 스케줄이 잡혀 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빛낸 영 아티스트 장한나(첼로)와 사라장(바이올린)에 이어 ‘정상희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그는 벌써부터 3월 이탈리아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 “해외에서 좀 더 활약한 다음 한국에서 활동하려고 해요. 나중에 한국과 유럽의 클래식 음악계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어요.”

모처럼 서울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언어가 다르고 얼굴이 달라도 음악이라는 만국 공용어로 소통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곡을 해석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