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용호] 존경받는 법관상 세우려면
입력 2012-01-01 18:13
미국의 경제위기가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겨냥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각국에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변혁의 목소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년실업, 반값등록금 등 경제적 현안에서 촉발된 변혁의 바람이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형성하면서 분출되고 있다. 그동안 애써 사회적 현안으로부터 비켜서 있던 20∼30대와 일부 시민단체마저 직접 변혁의 중심축으로 옮아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축복이다.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현실정치에 반영되는 것 역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법관 시민단체 커진 목소리
그렇지만 이러한 권한의 행사 이면에 함께 내포되어 있는 책임의 측면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중립성과 비정치성을 모토로 기능해 온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이 축소되어서도 안 됨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인기영합정책만을 펼치고, 시민단체가 정치적 과실에 오염되고, 젊은 세대들이 권한만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난달 3일 순직한 소방관들의 행적이 또다시 우리 사회에 신선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음은 왜일까. 자기희생보다는 자기이익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그들로부터 나라사랑의 징표를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 것만 챙기려고 아우성인 우리 사회에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必生卽死, 必死卽生)”라는 교훈이 새삼스럽다.
요즈음 ‘표현의 자유와 그 한계’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특히 논쟁의 당사자인 일부 법관들이 집단적 움직임까지 보이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ISD를 주권의 침해로 볼 수 있는가의 여부’ 또는 ‘SNS를 사적 공간으로 볼 수 있는가의 여부’ 등 핵심적 쟁점에 대한 논의에 앞서 선결적으로 이해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 있다.
먼저 법관들은 국민으로부터 권위와 존경을 부여 받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기 논쟁의 어느 쪽에 서거나 그 평가는 법관에 대한 높은 기대가치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법관에게 부여된 권위와 존경은, 법관 개인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이라는 직무에 부여된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SNS의 이용을 둘러싼 논의’의 중심에는 ‘SNS의 이용 자체’보다 ‘그 내용’의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듯이 법관도 마찬가지이다. 동시에 시대적 흐름에 비추어, SNS를 통한 표현의 자유 또한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관에게 권위와 존경을 부여하면서 국민이 반대급부로 요구했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침해 받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엷어진다면 그만큼 법관에 대한 존경도 엷어지기 때문이다.
희생 감수해야 권위 뒤따라
넷째 법관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서 그 언행이 미치는 상징성과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정치적 언행은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관의 정치적 독립과 사법권의 독립은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다섯째 법관도 국가라는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굳이 관련 법률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모든 조직의 구성원은 복무의무를 지며, 나아가 모든 국민은 국가를 위해 봉사할 의무를 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법관들이 진정으로 존경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존경받는 법관상을 만들어 갈 때, 국민은 박수를 보낼 것이고 행복해할 것이다.
이용호 영남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