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용솟음치는 2012년

입력 2012-01-01 18:22

드래곤(dragon)과 용(龍)은 상상 속의 동물로 사전적으론 같은 뜻이다. 하지만 드래곤과 용은 그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

서양과 중동에서 주로 거론되는 드래곤은 악마의 보물을 지키는 수호자, 신의 은총을 방해하는 자, 백성들을 괴롭히는 괴물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국엔 용사·영웅들에게 퇴치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삼아 작곡한 4부작 오페라 ‘리벨룽겐의 반지’의 주인공 지그프리트가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그가 거대한 괴물 드래곤을 무찔러 죽였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인도, 일본 등 동양권에서 용은 친근하고 고귀한 존재다. 우선 용은 드래곤의 이미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물의 신’ ‘바다의 신’의 이미지가 늘 따라 붙는다. 바로 용왕이다. 그만큼 용은 물을 좋아하고 물과 관련이 깊다. 또한 용은 봉황, 기린, 거북과 더불어 동양의 대표적인 신령한 존재로 꼽히기도 하며 청룡은 백호, 현무, 주작과 함께 4대 수호신으로 알려졌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얼마 전 2012년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를 맞아 마을·산·바위·폭포 등 전국 150여만 곳의 이름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용과 관련된 지명은 총 1261개다. 호랑이와 토끼 관련 지명 각각 389개, 158개인 데 비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예부터 용을 길(吉)한 것으로 봐왔다는 얘기다.

용은 왕을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흔히 사용된다. 용안(龍顔), 용포(龍袍), 용상(龍床) 등이 각각 임금의 얼굴, 의관, 의자를 뜻하는 것처럼 용은 임금을 상징한다. 잠재적인 대선 후보들을 칭하는 잠룡(潛龍)이란 말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말일 터다.

우연찮게 올해는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나라들이 대권 교체기를 맞는다. 정권교체는 지난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에서 먼저 시작됐다. 당장 이달 14일 벌어지는 대만의 총통선거를 비롯해 러시아(3월), 중국(10월), 미국(12월), 한국(12월) 등으로 대선이 줄을 섰다. 일본 또한 올해 총리가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

임진년, 물 만난 용(흑룡)의 해에 벌어지는 새로운 대권 탄생은 상징적인 의미가 적지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대권을 좌우하는 것은 잠룡들의 운명이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이다. 우리의 2012년이 정말 용솟음칠 수 있으려면 눈앞의 잠룡들이 용인지 이무기인지부터 잘 가려봐야겠다.

조용래 카피리더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