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반정부 시위 희생양 찾기”… 보안당국, 카이로 주재 美 인권단체 등 17곳 압수수색
입력 2011-12-30 19:20
이집트 보안 당국이 카이로 주재 미국 인권단체들에 대해 전례 없는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될 위기에 처했다고 외신들이 29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AP AFP 가디언 파이낸셜타임TM(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집트 보안 당국은 이날 국가 민주주의연구소(NDI)와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 국제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 사무소 등 인권단체 사무실 17곳을 압수수색했다. 이 중 NDI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설립했으며 IRI는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소장직을 맡고 있는 등 사실상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다.
압수수색은 무장한 보안 경찰들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뤄졌으며 수색 중 직원들은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으며 전화도 금지됐다.
이집트 당국의 이 같은 조처에 대해 해당 단체들은 물론 미국 정부는 즉각 단호한 반응을 보이고 후속 조치를 취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런 행동은 양국 간 협력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매우 우려스럽다는 뜻을 전했다. 또 “이집트 정부에 비정부기구(NGO) 직원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고 압수한 집기를 돌려주는 한편 이번 문제를 마무리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집트 주재 앤 패터슨 미국대사는 이집트 총리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RI 측은 “2005년부터 이집트와 일해왔는데 독재자인 호스니 무바라크 시절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며 “경악하고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NDI 측도 수색 당시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어떤 설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의 배경을 둘러싸고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 측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 뻔한데도 무리하게 압수수색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집트 당국은 이번 압수수색이 시민단체의 자금 조달을 조사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현지 NGO 단체들이 외국의 자본을 받아왔으며 최근의 시위도 외세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군부 비난에 앞장서고 있는 인권 단체와 다른 조직에 대해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집트 ‘휴먼라이트CM워치’의 헤바 모라예프씨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일은 무바라크 시대의 법을 이용해 이집트 시민사회를 대대적으로 소탕하려는 행위의 일환”이라고 비난했다. 또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 중동북아프리카지부 부소장인 하씨바 하지 사라오우는 AP통신에 “나는 이번 일이 이집트 집권 군부최고평의회가 희생양을 찾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고 본다”면서 “이는 무바라크 시대의 가장 최악의 악행을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영 기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