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대륙을 가다] 극지연구 새 장 여는 대한민국의 ‘진짜’ 남극기지

입력 2011-12-30 09:41


로알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밟은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의 마지막 날, 마침내 대한민국의 아라온호가 남극대륙에 닿았다. 적도를 지나서 지구 남반구의 파도와 유빙을 헤치고, 미지의 대륙을 찾았다. 아라온호가 2012년 새해 벽두부터 남극을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

◇제대로 된 남극기지를 짓는다=대한민국은 1988년 2월 세종기지를 세웠다. 하지만 위치가 문제였다. 세종기지가 들어선 남위 62도13, 서경 58도47의 킹조지섬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아남극권이다. 백야조차 나타나지 않는, 남극권에서 가장 남극답지 못한 곳이다.

면적 약 1360만㎢, 한반도(22.1㎢)의 62배에 달하는 거대한 남극 대륙에서 킹조지섬은 끝자락에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만약 누군가 한반도를 알아보겠답시고 마라도의 기후, 환경을 조사한 뒤 ‘한반도는 따뜻한 해양국가’라는 결론을 낸다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가.

위치 때문에 세종기지에선 우주시대를 준비하는데 필수적인 고층대기과학, 남극의 지진과 해역지도 등을 연구하는 지구물리학 등의 연구에 제약이 컸다. 남극대륙 및 주변 대륙붕 지역의 막대한 광물, 수산해양자원에 대한 조사도 불가능했다.

남위 74도37, 동경 164도12. 대한민국의 남극 제2기지인 ‘장보고 과학기지’가 들어서는 위치다. 남극 대륙 깊숙한 테라노바 만에 세워진다. 남극의 단 2%에 불과한 육지 위에 세워지는 새 기지는 세종기지의 한계를 모두 극복할 수 있는 ‘진짜’ 남극기지다.

대한민국 남극 연구의 최종 목표는 대륙 내륙의 고도 4000m지점에 기지를 짓는 것. 장보고 기지는 우리나라 극지연구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다.

◇남극 열강의 반열에 든다=남극에는 20개국 39개 상주기지가 설치돼 있다. 남극기지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력과 과학 기술력이 월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영광을 위해 미국과 구소련은 첨예한 기지 건설 경쟁을 해왔다. 최근 들어 중국이 남극 최고 고산지대에 ‘곤륜기지’를 준공하는 등 남극기지 건설 경쟁에 가세했다.

2곳 이상의 상주기지를 운영하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아르헨티나, 호주, 칠레 등 모두 8개국이다. 이중 지리적으로 가까운 세 나라를 제외하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강대국들이다. 장보고 기지가 완공되면 대한민국은 2곳의 기지를 운영하는 9번째 나라가 된다.

새 기지에선 세종기지에서 엄두를 못 낸 고층대기학, 빙하학 등 순수과학 분야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다양한 응용분야 연구도 가능하다. 남극의 미생물과 천연물질에서 새로운 물질과 의약품 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고립된 곳에서 사는 인간심리 연구, 얼음 땅 위의 건축과 토목공학 연구 등 활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남극에서 새로운 학문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제2기지는 남극 영유권 주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남극조약은 남극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들의 권리를 인정도 부정도 않고 있다. 노골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나라는 없지만 남극 영토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남극 대륙에 있는 기지는 우리의 발언권을 높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장보고 기지가 완공되는 2014년 3월 남극 테라노바 만에 휘날릴 태극기는, 대한민국이 극지연구 선진국임을 세계에 알릴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긍지를 가져도 좋다.

아라온호(남극)=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