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중학생 자살도 학교·경찰이 성적 탓으로 축소”… 대구 이어 또 학교폭력 문제 불거져 충격
입력 2011-12-30 18:57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광주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의 자살을 학교와 경찰이 단순 ‘성적 비관’ 자살로 판단하려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숨진 학생의 친구들이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진술하면서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에 이어 또다시 학교폭력 문제가 충격을 주고 있다.
A군(14)의 아버지(46)는 30일 “아들 친구들이 영안실에 찾아와 아들의 학교폭력 피해 실상을 알려줬다”며 “하마터면 집안 종손인 외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진실도 모른 채 묻어버릴 뻔했다”고 울먹였다.
그는 이어 “아들의 죽음을 성적 비관으로만 몰고가려 한 학교 측과 경찰이 원망스럽다”면서 “앞으로 또다시 학교폭력으로 인한 제3의 피해자가 없도록 아들이 죽게 된 동기가 진실 그대로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A군은 지난 29일 오전 9시40분쯤 광주 용봉동 자신이 사는 아파트 17층 계단 난간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학교 측은 A군의 가출 전력과 최근 기말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온 점 등을 들어 성적 문제를 고민하다 전날 오후 귀갓길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A군의 친구들이 영안실을 찾아 학교폭력 사실을 얘기하면서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학생들은 “경찰과 학교 측이 자살 이유를 성적 비관으로 보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해 방학도 하루 앞당겼다고 주장했다.
A군의 아버지는 영안실을 찾아온 A군 친구들이 이미 와 있던 교장과 교사들의 눈치를 보며 말하기를 꺼려해 교장과 교사들을 내보냈고,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A군의 아버지는 “학교 측에 불리한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학생들을 입막음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친구들은 A군이 자살한 지난 28일에도 2교시 수업 이후 쉬는 시간에 다른 반 B군(14)이 교실로 찾아와 “담배 갖고 왔느냐”고 물었다가 “없다”는 대답을 듣자 권투 선수가 샌드백 치듯이 A군을 폭행했다고 전했다.
같은 학교 친구 C군은 “올 2학기 들어 거의 매일 B군이 담배를 구해 오라거나 돈을 빼앗으며 A군을 괴롭혔다”면서 “반항하면 폭행하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A군의 부모는 그동안 아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경찰은 A군이 담배 앵벌이를 하거나 돈을 빼앗긴 것을 학교폭력으로 보기보다 괴롭힘의 정도에 이르지 않는 통상적인 수준의 행위로 간주했다.
경찰은 그러나 A군 친구들이 학교폭력 때문이라고 진술하자 하루가 지난 30일 오전 형사 25명으로 전담수사팀을 꾸려 학교폭력이 있었는지 수사하고 있다.
광주=이상일 기자 silee06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