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시대] 南과 대립각 세워 주민들 결속력 강화 노리는 듯

입력 2011-12-30 18:52

북한 국방위원회가 30일 우리 정부에 대해 ‘역적패당’을 운운하며 강경 성명을 발표한 것은 대내외적 사정을 감안한 ‘고도의 계산’으로 풀이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이동 시기에 놓인 북한 내부 민심을 추스르는 동시에 특유의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대화하고 남한과는 단절한다) 외교를 펴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우선 북한은 성명을 통해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시대’와 마찬가지로 정상 가동되고 있음을 과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방위원회는 그간 대변인 성명으로 우리 정부를 비난한 적은 있지만 기관 명의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동국대학교 김용현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주요정책 결정과정이 김정일 사후에도 흔들림 없이 진행되고 있어 체제가 불안정하지 않다는 것을 확고히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남쪽과 선명한 각을 세워 주민 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에 “대북 정책기조에 변화가 없는 한 관계개선은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도 있다는 관측이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추도대회 다음 날 김영삼 정부의 조문불허를 이유로 김 전 대통령을 ‘패역도당’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국방위는 이번에도 우리 정부의 주민과 정권을 분리한 조의 표시, 청와대 관계자의 천안함 관련 발언, 육해공군의 경계태세 등을 언급하며 “이러한 악행의 앞장에 이명박 역도가 서 있다”며 비난했다.

17년 전과 유사한 상황으로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남 강경일색인 국방위 성명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강조한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 여하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의 여지는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공을 남쪽으로 던져놓은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아울러 북한이 향후 대미 관계개선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번 성명에서 단 한마디도 미국을 언급하지 않았고,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대미 비난을 북한 당국이 자제하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북한은 미국과의 ‘빅딜’을 통해 대규모 식량·경제 지원을 이끌어내고 6자회담 재개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국방연구원 김진무 박사는 “김정일 사후에도 북한은 미국과의 채널을 유지해 오고 있다”며 “3차 북·미회담을 가능한 빨리 추진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번 성명이 김정은 체제의 정책 노선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는 시각도 있다. 국방위는 사망한 김 위원장의 ‘유물’일 뿐이고,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군사위를 중심으로 통치에 나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북한의 이후 대남정책 방향은 2012년 1월 1일 발표될 신년 공동사설을 지켜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관진 우리 측 국방장관과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전화통화를 통해 “한반도의 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