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군, 그들은 왜 연안에 갔을까… 안재성 장편 ‘연안행’
입력 2011-12-30 18:21
‘파업’ ‘경성트로이카’의 작가 안재성(51·사진)의 신작 장편 ‘연안행’(삶이보이는창)은 북한 정권의 탄생 비화와 맞물린 조선의용군의 옌안(延安) 시절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고 있다. 이야기는 모 문학상 심사위원이 이메일로 투고된 소설 한 편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베리아 벌목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는 북한 주민이 임동순이라는 가명으로 보내온 소설 제목은 ‘연안행’.
소설 ‘연안행’은 임동순의 아버지 임상혁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나간다. 1938년 늦가을, 스물세 살의 나이에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중국 상해로 건너온 청년 임상혁은 조선 젊은이들이 주로 모인다는 한 조선 국숫집에서 정명선이란 여인을 만나 그녀의 권유로 조선의용대에 합류한다. “조선의용군 본부가 주둔한 곳은 계림이었다.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계림까지 먼 길을 거의 굶다시피 하며 여행해야 했다. 잠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고, 때로는 식당 문 닫기를 기다렸다가 뛰어 들어가 서툰 중국어로 남은 음식을 좀 달라고 구걸하기도 했다.”(29쪽)
전쟁을 다룬 사실주의적 작품들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고뇌 등을 무겁게 그려내기 마련이지만 소설 ‘연안행’은 참전 중인 병사의 모습을 시종일관 밟고 힘차게 그리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팔로군과 우리에게 보급되는 좁쌀은 아무리 잘 물에 일어서 밥을 지어도 모래알이 씹혔다. 힘껏 씹었다가는 이빨이 부러지기 딱 좋았다. 그래도 대원들은 껄껄 농담으로 넘겼다. ‘아무리 모래가 많아도 그래도 쌀알이 더 많지 않겠어?’ ‘에쿠, 또 돌이다. 에라, 일본 놈 씹어 먹듯 갈아 먹을란다.’”(128쪽)
조선의용대가 마침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연안. 그들은 왜 연안에 갔을까. 연안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이 무렵의 연안은 혁명적 사상을 가진 모든 조선인들이 꿈에 그리는 곳이었다. 잔학한 일본군과 부패하고 무능한 국민당 군대에 더렵혀진 중국 대륙에서 유일하게 정의가 지켜지는 곳으로 여겨지던, 혁명의 성지였다. 국내의 항일 사회주의자들까지도 중국공산당이 웅거한 연안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고 겹겹의 검문을 뚫고 연안행을 감행하고 있었다. 조선의용군의 연안행 결정은 대원들을 들뜨게 했다.”(160∼161쪽)
격랑의 한국 현대사에 휩쓸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조선의용군의 ‘연안행’은 그들의 삶과 꿈을 되살리려는 시도이자 그들의 잊혔던 꿈을 다시 흔들어 세우는 걸음걸음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