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4.0, 다시 부흥이다] 말씀 전하고… 성령 채우고… 소통 잘하고… 나눔 더 하고…

입력 2011-12-30 18:46


2012 한국교회 4대 키워드

[말씀] 한기채 목사 - 말씀이 세상에 녹아들어 변화시키는 힘으로

성경을 읽어보면 새로운 인물은 새로운 사고구조를 가지고 온다. 어떤 면에서 사람은 새 패러다임을 가지고 오는 전달매체다. ‘메신저가 메시지’인 셈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인물도 새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면 사라지고, 새 패러다임을 지닌 새 지도자가 나타난다. 메신저가 부단히, 적극적으로 변화를 도모하면 메신저가 바뀌지 않고도 다양한 메시지를 계속 전달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이 바뀌느냐, 패러다임이 바뀌느냐는 양단간의 선택이다. 말씀은 우리의 삶과 상황 깊숙이 들어와야 한다. 그것이 말씀의 육화다.

예수님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 ‘진리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아니라 ‘내가 곧 진리다’라고 선언하셨다. 그리스적 진리는 인식의 진리로 ‘무엇’을 문제삼지만, 히브리적 진리는 존재의 진리로 ‘누구’에 관심이 있다. 진리는 소유적이 아닌 존재론적·인격적인 것이다. 여기에 성육신의 신비가 있다. 예수님은 말씀이 몸을 입고 삶으로 나타난 진리다. 삶 자체가 살아있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곧바로 개념화하거나 영적인 의미를 주로 탐구했다. 이제 말씀의 개념화보다 구체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몸을 입고 다시 한 번 살아서 역사해야 되겠다. 말씀이 내게 임해 내가 작은 예수로 사는 것이다. 그러자면 말씀을 온 몸으로 읽는 수밖에 없다. 말씀은 우리의 몸을 입고 싶어 한다. 예수님에게 성육신하셨던 말씀은 이제 우리의 몸을 입고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말씀이다.

말씀이 깨달음과 감동으로 연결되고, 다시 인격을 빚어내고. 새로운 행동을 촉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성경읽기 방식은 온몸으로, 실천적 행위로 읽는 것이었다. ‘기독교 4.0’은 말씀이 내 삶에 육화되고, 말씀이 사회와 문화 속에 녹아들어가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성령] 한상인 목사 - 권능과 성결 양날개로 교회가 탈바꿈을 해야

오순절 이후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성령을 받기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 성령을 통하여 사람은 비로소 성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아버지와 아들로 충만할 수 없다. 이 시대 한국 기독교의 무기력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제대로,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성령의 역사는 권능과 성결이라는 양 날개를 통해 나타난다. 양 날개를 사용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힘차게 날아갈 수 있듯 균형 잡힌 성령운동을 회복할 때 진정한 교회부흥이 이뤄진다.

첫째, 진정한 기독교 부흥을 이루려면 성령의 권능의 날개를 강하게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 이후 무기력해진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실 때 권능을 받아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표적으로 충만해야 한다.

둘째, 성령 충만한 성결의 날개가 회복돼야 한다. 오늘날 안티 기독교나 이단사설이 만연한 것은 지저분하면 파리와 벌레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기독교의 성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 자정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소멸하고, 거역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성령을 슬프게 하는 교회분열과 권력투쟁에서 벗어나 초심의 낮아짐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성령의 불을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고, 문화로 포장된 세련됨을 따라감으로써 열정적 성령운동의 불을 꺼뜨리는 잘못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죽고만 것처럼 심판을 초래하는 것이다. 기독교 4.0. 성령의 권능과 성결의 양 날개로 다시 부흥하는 2012년을 꿈꾸고 믿고 선포하자!

[소통] 이성희 목사 - 비판에 귀막지 말고 말 아닌 마음으로 교감

교수신문은 지난해 ‘2011년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掩耳盜鐘)을 선정했다. 춘추시대 진나라 범무자의 후손이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다. 그 때 한 사람이 종을 짊어지고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짊어지고 가기엔 너무 크고 무거워 망치로 깨 가져가려 종을 치니 큰 소리로 종이 울렸다. 그는 다른 사람이 종소리를 듣고 달려올까 봐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 이 고사에서 유래된 ‘엄이도종’은 나쁜 일을 하고도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다른 사람의 비판에 귀를 막는 태도가 만연해있다. 정부가 그러하고, 여러 기관이 그러하고, 교회도 그러하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명하면 될 것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이의제기나 비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소통은 상대를 나와 같은 위치에서 볼 때 가능하다. 고자세에서 지배적인 마음을 가지면 소통이 끊어진다. 그러므로 생각은 특별하게 하되 소통은 보통 사람들의 말로 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팀의 시대’라고 한다. 소통이 없는 팀은 단지 개개인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통은 양질의 연합을 가능하게 하며, 좋은 소통은 큰 이익을 창출한다.

10년 동안 동굴 안에서 도를 닦는 자가 있었다. 어느 날 명상을 하는데 원숭이가 살며시 다가왔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원숭이가 샌들을 집어들자 소리쳤다. “이놈이 명상을 방해하는구나”. “배가 고파요”. “신과 소통하려는 나를 방해하지 말고 어서 꺼지지 못해.” “짐승인 나와도 소통을 못하면서 어떻게 신과 소통을 할 생각이세요?” 부끄러워진 수행자는 원숭이에게 사과를 했다. 소통의 65%가 언어 외의 다른 경로를 통해 이뤄진다. 소통은 입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나눔] 박만희 사령관 - 초대교회처럼 기독인부터 작은 사랑 실천을

인간 삶의 기본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슈가 복지다. 그래서 선진국을 가늠하는 척도가 사회복지의 정도다. 우리 사회에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복지의 기본 개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빈부라는 경제적 잣대를 넘어 모든 사람이 일정 수준의 삶의 만족을 누리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회복지로 인한 국가경제적 문제를 고려하는 편에서는 복지의 포퓰리즘을 염려해 사회복지의 객체를 ‘모든 사람’이 아닌 ‘필요한 사람’으로 한정하려 한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필요한 사람’에서 ‘모든 사람’으로 대상을 확대 해석한다.

그러면 기독교의 입장은 어떠한가. 오늘날 교회의 원형이 되는 초대교회는 다양한 사역을 했다. 초대교회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나눔과 봉사였다. 대상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모든 사람이었다. 초대교회가 핍박이라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나눔과 봉사를 통한 그리스도의 사랑실천 때문이었다. 교회 밖 사람들에게까지 감동과 감화를 준 결과 ‘그리스도인’이란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초대교회의 모습에 비춰 본 오늘날 기독교의 사회복지 입장은 선별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에 가깝다. 나눔과 봉사는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진정한 사회복지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임진년이 시작됐다. 올 한해 모든 기독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소박하게나마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남이 아닌 나에게 하듯 말이다. 이런 실천이 조금씩 확산되면 우리 기독교를 통해 세상은 살맛나는 복지사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지듯 이 땅에서도 이뤄지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