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 오르게 한 힘, 어머니 칭찬이었소… ‘16인의 반란자들’
입력 2011-12-30 18:30
16인의 반란자들/글 사비 아옌·사진 킴 만레사/스테이지팩토리
“비가 내린다. 대문에서 사라마구의 아내 필라르가 우리를 맞이한다. ‘주제, 오늘부터 사흘간 당신의 그림자가 될 분들이 오셨네요.’ 이제 막 오수에서 깨어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우리를 반긴다.”(19쪽)
지난해 지병으로 별세한 포르투갈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일상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사흘간의 인터뷰는 2008년에 진행됐다. 27세 차이가 나는 아내와 거리에서도 줄곧 손을 꼭 맞잡고 열정적인 키스도 마다치 않는 사라마구는 인터뷰 당시 80대 중반의 나이를 의식한 듯 죽음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죽음의 시간이 도래하면, 나는 아무 데도 들어가지 않고 원자로 해체될 거요. 두 달 전에 내가 키우던 개가 그랬듯이 말이오. 모든 게, 이 지구가, 천체가, 태양계가 끝나는 그날이 되면….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할 거요.”(21쪽)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 출생의 오르한 파묵의 집필실은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대교가 내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다.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파묵은 “이곳에서 넋이 나간 채 풍경을 쳐다보았고, 바다 위를 지나가는 배들의 수를 세었다”고 말한다. 23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방에 처박혔으며 첫 소설을 탈고할 때까지 3년이 걸렸고 그 원고가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4년을 기다렸다는 파묵은 어머니의 칭찬 덕분에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나는 서른 살까지 돈을 벌지 못했고 그래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위대한 자기 확신을 물려주셨어요. 다섯 살 때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그리고 있으면 그때마다 이렇게 소리쳤어요. ‘이 녀석은 천재야, 천재! 아,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러니 지금 여기 있지 않소?”(105쪽)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절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자 인터뷰 요청을 어렵사리 받아들였다. 하지만 섭외 과정은 스파이 영화처럼 진행됐다. 작가 쪽에서 정한 멕시코시티의 한 호텔에 묵으면서 이틀이나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마르케스는 물론이고 그의 아내와 아들까지 만나는 보상을 받았다.
멕시코시티에 앉아 조국인 콜롬비아의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훤히 꿰고 있는 마르케스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2005년부터 안식년에 들어갔어요.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았고, 글이라고는 단 한 줄도 안 썼지요. 절필이 내 삶을 바꾸지는 못했어요.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오.”(185쪽)
명성이란 게 권력과 같아서 현실감각을 흐트러뜨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엉망이 돼버렸다는 마르케스. 그래서 개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효과적인 메커니즘을 찾고 있다는 마르케스는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공개석상만 나가면 덜덜 떨게 된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스페인 ‘라 반과르디아’지의 문학전문기자 사비 아옌과 사진기자 킴 만레사가 2006년부터 2008년에 걸쳐 20세기를 통과하며 인류의 언어미학을 최고점에 올려놓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16명을 집중 인터뷰했다. 정창 옮김.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