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세까지 사는 시대… 더 고달파질까? 덜 고달파질까?
입력 2011-12-30 18:43
150세 시대/소니아 애리슨/타임비즈
바야흐로 100세 장수 시대다. 1970년 한국인 평균수명은 61.78세였으나 2010년엔 80세를 기록했다. 40년 동안 평균수명이 20년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증가 추이로 보면 150세 시대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미 100세 기대수명을 겨냥한 상품이 속속 등장했고 재테크, 2세 계획과 직업 구상, 더 나아가 국가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150세 장수 시대의 단초는 노화가 시작되는 시기가 늦어진다는 단순한 사실에서도 인지된다. 항생제, 백신, 비타민 등의 발명으로 인류의 기대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기대수명이 높아진다는 것은 자연히 노년층이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65세 대부분이 1900년의 65세보다 훨씬 건강하다. 마라톤에 출전하는 91세 노인도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150세 장수 시대는 인간 신체의 하드웨어를 교체할 수 있는 날과 맞물린다. 심장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까지 인공 심장이 만들어진 적은 없지만 그건 어렵고 복잡한 과정일 뿐 불가능하지는 않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도리스 테일러 박사의 심혈관 연구실은 2008년 쥐의 심장을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예일대 로라 니클라슨 박사팀은 폐를 배양해서 쥐에 이식하는 데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인공 폐는 두 시간 동안 정상 폐의 95%에 해당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잘려져 나간 신체 일부를 재생시키는 꿈의 실현도 눈앞에 두고 있다.
중국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의 명약을 구하려다 실패했다지만 우리는 적어도 노화를 인위적으로 늦추거나 방지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신시아 케년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늘 신체 부위가 자동차처럼 결국에는 소모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충에서 유전자 하나를 조작해서 사실상 모든 면에서 젊음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노화 역시 지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71쪽)
150세 시대의 가능성에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하는 또 다른 근거는 인간 게놈을 배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장수하는 사람의 게놈을 분석하면 일반인에게는 없는 ‘특수한 보호 유전자’를 판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암세포를 가진 약점을 찾아내 맞춤화된 치료도 가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나올 만하다. 노화를 늦추고 인간을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도록 돕는 것은 과연 잘하는 일일까? 아니면 재앙의 시작일까. 여기엔 많은 이론이 존재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생명공학자문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레온 카스 박사는 “수명연장을 위해 생명공학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죽음만 없다면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주장은 우리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면 더 나아질 거라는 주장과 같다는 것이다.
카스 박사는 노화에 맞서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오래 살게 되면 흥미와 관심을 잃게 된다. 둘째, 진지함과 열망이 줄어든다. 셋째, 죽음이 ‘인간 고유의 미덕과 도덕성을 장려한다’는 믿음이다. 이에 대해 진보주의 학자들은 이렇게 강변한다.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사는 삶으로부터 나온다.”(131쪽) 누군가를 돕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에게 해를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어쨌든 인류의 평균수명이 연장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징후는 가족 형태의 변화다. 1850년엔 기대 수명이 43세 정도여서 천생배필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루 빨리 자식을 낳고 자식이 잘 크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기대 수명이 80세 정도로 늘어난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 죽을 때까지 함께 하기로 맹세하기 전에, 일단 동거를 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기대 수명이 150세가 되면 30세에서 120세의 범위 내에서는 누구하고나 교제가 가능하게 된다. 120세인 사람이 아주 젊은 사람과 사귀는 일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식들 사이의 터울도 20세, 50세, 심지어 70세나 벌어질 수도 있다. 터울이 길면 교류는 줄어든다. 구성원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격차를 좁히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한 가족이 공유하는 문화 자체가 강렬해 나이 차이가 별로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둘 중에 어떤 것이 정답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100세 시대를 찍고 150세 시대로 가고 있다. 골골거리면서 더 오래 사느냐, 아니면 젊고 짧게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저자는 미국 미래학자이자 공학자.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